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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창재인] 히스클리프

2021-07-13

Scenario Writer. 숑곰

GM. 유성우

PL. 으스름달


유성우(@c0met99)님 세션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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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우 (GM):하이하이~~
시트드렸습니다!
 
으스름달:행운... 굴릴까요?
 
유성우 (GM):조와용!
 
강재인:30
 
으스름달:ㅋㅋ
 
유성우 (GM):한번 더
해봅시다...ㅋㅋㅋㅋㅋㅋㅋ
 
강재인:55
 
으스름달:어얼
 
유성우 (GM):ㄱㅊ네요
55갑시다 ㅋㅋㅋㅋㅠㅠ
개떨리네 저 정은창 캐입 보려고 강재인 정은창 클립 영상 보고 왔는데 마음의 상처만 얻고 옴
 
으스름달:....................
흐에엥
 
유성우 (GM):흐에엥
 
으스름달:그런짓은 하지말아야 했는데...
 
유성우 (GM):ㅋㅋㅋㅋㅋㅋ그래도 참고는 될 것 같아요...
시트 다 채우셨으면 확인할게요!
 
으스름달:넹!
 
유성우 (GM):매혹 75 미치겟다
 
으스름달:호 혹시몰라서^^
 
유성우 (GM):ㅋㅋㅋㅋㅋㅋㅋ그래욥ㅋㅋㅋㅋ 확인 다 끝났습니다!
그러면 시나리오 안내사항을 조금 드릴게요
개요는 아실테구... 정은창이 강재인의 저택의 사용인이며 강재인은 정은창의 고용주라는 설정입니다! 둘이 알게 된 지는 엄청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최소 6개월 정도로 생각해두고 있어요
 
으스름달:네!
 
유성우 (GM):그리고 시나리오 BGM을 링크로 사용할 건데 테스트해볼게요!
♬<가 붙은 글자를 클릭하시면 유튜브로 넘어갑니다!
 
으스름달:돼요!
 
유성우 (GM):좋아요 잘 넘어가는군요~
 
으스름달:광고가... 두개뜨는거빼고...ㅋㅋ
 
유성우 (GM):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
크아악
뭐 노래는 중요치 않아요 밝은 노래입니다
 
으스름달:조아요
 
유성우 (GM):그러면... 안내사항은 다 드린 것 같구
아 떨리네
어카냐...
 
으스름달:덜덜 떨고있는 탐사자;;
 
유성우 (GM):개망한 정은창 견뎌주세요...^^
캐릭터로 바꿔주시면 시작합니다!
 
===
 
2021 07 12
 
히스클리프
 
written. 숑곰
 
KPC 정은창 / PC 강재인
 
....
 
네, 상대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과 그 상대 집안의 명성만 익히 들어 알 뿐인 마음 없는 정략 결혼 말입니다.
 
이 지진한 시대의 결혼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저택의 모든 이들은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당신을 위한 예복과 함께 저녁에는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까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상당히 피곤한 일정입니다. 휴식 시간은 거의 주어지질 않는군요.
 
모두 이 결혼과 축하연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아니. 모두는 아닌가.
 
문간에서부터 당신을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정략 결혼이라는 소식을 접할 때부터 조금 어두운 낯인 정은창입니다.
 
봐요. 지금조차. 조금도 기쁘지 않은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잖아요.
 
정은창:(약간 찡그린 낯으로 문 근처에서 서성이며 강재인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살짝 쥐었다 폈을까. 당신에게 다가가서 손을 뻗는다. 손은 화장대에 놓인 빗을 들어올렸고, 여느 때처럼 차분한 손길로 당신의 머리카락을 빗겨 정돈해준다.) …내일이면 결혼식이네. 준비는 잘 되고 있는 거야? 뭐... 해봤자 내가 다 하는 처지이지만. 우리, 그런 사이잖아. (퉁명스러운 말투면서 가라앉아 있는 게, 이 결혼식이 전혀 달갑지 않음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 같았다.)
 
강재인:내가 준비할 게 뭐 있겠어. 나야 가만히만 있으면 알아서 진행되는 결혼식이잖아? (불만이 가득해보이는 당신의 태도를 모르는 척 넘기며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꾸했다. 물론 자신이 손댈 것 하나 없는 결혼식이라는 말에 틀린 구석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그저, 다들 겪는, 삶에 있어서 당연하게 겪어야 할 하나의 수순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그렇지. 그런 사이지. (그마저도 결혼 후에는 어떻게 바뀔 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사이지만. 그 말을 속으로 삼켜내며 잠자코 당신의 차분한 손길을 받았다.)
 
정은창:덕분에 나는 손이 모자라. 항상 바쁘고, 쉴 틈도 없고... (불만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지만 머릿결을 정리해 주는 일은 빈틈없이 말끔했다. 강재인의 아래에서 생활하며 나름 제대로 배운 건가. 긴 머리를 한데 모으고, 땋은 뒤에 조심스레 위로 묶으면 당신의 단정한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그 모양새를 보니 제 맘에 들지 않는 결혼식 전날의 당신이라도 작은 뿌듯함이 드는 것이었다. 아까보다는 덜 까끌하며 풀어진 어조로.) 그래서, 너는 정말 이런 정략결혼이라도 괜찮아? 상대의 얼굴도, 성격도. 하다못해 소문조차도 없잖아. 나였으면 지긋지긋해서 당장 도망쳤을 것 같은데. …물론, 너보고 도망 치란 소리는 아니지만. 오해하지는 마. (착각하지 말라는 뒤늦게 덧붙인 말은 어느정도 진심처럼 들렸다.)
 
강재인:언제는 안 바빴던 것처럼 얘기하네? (툴툴거리면서도 제법 성실하게 제 머리모양을 잡아주는 당신을 향해 작게 웃음을 지었다.) 뭐어... (도망치라는 그의 말에 진심이 섞여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애매하게 말을 흐렸다.) ...어쩔 수 없잖아? 길거리 한 번 나가 봐. 다들 그렇게 살아. 나만 특별한 것도 아닌데, 뭘.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신이 묻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대답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비록 진심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당신의 질문에 대한 회피는, 곧 당신을 향한 경고와도 같았다. 네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고. 네 자리를 지키라고. 굳이 그렇게까지 선을 긋는 이유는, 자신 역시도 이 결혼식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처사였다. 몇 번이고 당신의 말을 듣고 있자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굳게 먹었던 마음이 변해버릴 것 같았기에, 두려워했는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정은창:...그렇지, 어쩔 수 없는 건 맞아. (괜한 데에다가 짜증을 부린 걸까. 왠지 입맛이 씁쓸하고 머쓱하여 제 마른 입술을 입안으로 밀어 넣곤 살짝 적셨다. 이내 알아챈 당신의 경고와도 같은 회피. 아무리 떠돌이 개처럼 방황하며 살았던 그라도, 이 저택에서 지내며 눈치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강재인이 자리를 소개해 준 덕분에 자신은 뭐라도 하면서 살아가는 게 분명했다. 때문에 이에 보답해야 한다… 정은창이 할 수 있었던 은혜 갚기는 별거 없었을 터.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해내는 언행과, 지금처럼 당신 말에 서린 의미를 빠릿하게 알아채는 것이었다. 잠시 말을 골랐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인 듯하였다. 침묵하며 무릎을 꿇어 당신의 드레스 끄트머리를 정리해 주고, 화장으로 인해 주홍빛으로 물든 당신 두 뺨으로 잠시 시선이 향했다. 붉게 물들어 있는 게, 마치 사랑에 빠진 것 같아서 탐탁지 않았다. 다만 이런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고, 속에 꾹 눌러 담은 것이. 당신이 더 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으면서 제 복잡한 심정을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강재인에게 묘한 감정을 가짐과 동시에 나 같은 게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때문에 그의 두 눈은 평소와 같았다. 조금은 찌풀거렸을 지 몰라도. 머리를 빗기고, 옷을 정돈해 준 뒤. 모든 순차가 끝나면 이제는 손님들에게 얼굴을 비출 차례다.) 슬슬 나가자. (정은창은 자연스럽게 강재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내하겠다는 의미이자, 잡고 따라오라는 뜻이기도 했다. 비롯 상냥함에서 나온 게 아닌 하나의 예의일지라.)
 
강재인:(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분명하게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거울을 통해 당신의 표정을 살피자 보이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것처럼 약하게 인상을 쓰고 있는 얼굴이었다. 감정을 숨기는 것에 능하지 않은 당신이었거늘, 이 저택에 들어온 이후로 조금은 그 행위에 익숙해진 것도 같았다. 제 말에 숨겨진 저의를 알아채는 속도가 빨라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가식을 두르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기 바쁜 이곳에서, 홀로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솔직할 줄 알았던 당신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도 같은데.) ... ... (아니, 아니지. 남몰래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내저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할 생각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에게 감정을 숨길 것을 강제한 것도, 자신의 말에 함의된 속뜻을 빠르게 알아채도록 요구한 것도 자신이 아니던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떠올려봐야 남는 것은 막연하고도 부질없는 후회였다. 지금 정도가 딱 옳았다. 완벽하게 이상적인 선. 그의 성격이든, 그와 자신의 관계이든... 어차피 이루어질 것들과 이루어지지 않을 것들은 태초부터 정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나가야지. (제게 내밀어진 손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그 위에 자신의 손을 가볍게 얹었다. ...아, 차라리 지금 제게 손을 내미는 그의 심정이 어떠할지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면 좋으련만.)
 
당신은 정은창이 내민 것 위에 손을 얹습니다. 정은창은 당신의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밖으로 이끕니다.
 
완전히 나가기 전,
 
◆: 정은창을 향해 심리학 판정이 가능합니다.
 
강재인:
심리학
기준치: 70/35/14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정은창이 유난히 피곤해 보이지 않나? 의문을 갖습니다.
 
....
 
당신의 곁을 당연하게 지키고 선 정은창이 유지하는 침묵만이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안기는 고요입니다.
 
주위는 어디를 보아도 왁자하기만 합니다.
 
몇몇 귀족들이 다가와 왁자하게 무어라 무어라 떠들어댑니다. 당신을 향해 인사를 건네며 큰 소리로 말합니다.
 
귀족들: 오랜만일세, 강재인! 자네가 어렸을 때부터 영특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린튼 가와 결혼을 하다니, 이건 정말 경사로군!
그 집안은 예로부터 아주 유명하지 않았나.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다고 말이야. 남은 건 만사형통이겠어!
 
있는대로 아는 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양반들, 본 기억이 없습니다.
 
잘 나가는 것 같으니 일부러 친하게 구는 거겠죠.
 
주위를 둘러보면 초대된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어라 대화하고 있습니다.
 
◆: 듣기 판정.
 
강재인: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손님들의 대화를 스쳐가며 듣습니다.
 
손님들: 그러고보니 린튼 가에서 근래에 실종자들이 늘어났다며?
결혼식 날짜가 발표된 이후에 계속 그렇다더라고. 무슨 마가 껴서, 이 경사스러울 때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지. 그도 그럴게 결혼이잖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당신을 알아본 귀족이 웃으며 다가옵니다.
 
이번에는 또 뭐라고 인사하려는 셈일까요. 결혼식의 주인공인 당신을 놔줄 생각인 이가 단 한 명도 없나봅니다.
 
귀족: 하하, 강재인! 만나서 정말 반갑네. 린튼 가와 결혼을 하게 되는 건 정말 축복이나 다름 없어! 나도 우리 자식을 린튼 가와 혼인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했다만... 뜻대로 되지 않았지. 자네는 정말 운이 좋은 걸세. 좋은 집안에서 자라왔구먼. 하하하!!
 
강재인:(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하나같이 짜증나는 말들 뿐이었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줄을 서 보려는, 아니, 자신의 뒷배가 될 집안에 줄을 서 보려는 심산. 축복이라고 하기에는 영 뒤틀린 태도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휘둘리는 입장이라면 지긋지긋했으니까.) 어머,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그쪽에서 저를 원한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죠. 역시... 운명이라는 건 노력을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예를 들어, 신께서 내린 가호라던가... 그런 것들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전 정말 운이 좋은 거죠. 이렇게 많은 축복 속에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분명,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아닐 테니까요.
 
귀족: 아. 그런가...? (멍청해서 비꼬는 건지도 모름.) 하긴, 자네말을 들어보니 운명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드네! 가호라고 하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지. 자네, 우리 가문도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왕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내가 이리 떵떵거리고 하는 것도 다 조상님들의 가호가 분명해! 하하, 우리 고조부할아버지가 말이야…
 
◆: 쓸데없는 이야기 뿐입니다. 귀족과의 대화를 끝내고 싶다면, 대인기능 판정.
 
강재인:
설득
기준치: 70/35/14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차분하게 귀족을 설득합니다. 일정이 많아 피곤하기도 하고, 다른 손님들에게도 가봐야 한다면서요.
 
정중한 거절을 듣고 나서 귀족은 멋쩍은지 자리를 피합니다.
 
귀족이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정은창이 입을 엽니다.
 
정은창:(...) 괜찮아? 저 사람은 뭐 그리 쓸데없는 이야기만 해서... (강재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너 정말 피곤한 건 아니지? 피곤하면 쉬는 게 낫겠어서 물어보는 거야.
 
강재인:그러게... 그래도, 내 결혼식인데 내가 빠질 수도 없잖아. (조금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피곤하지 않다는 거짓말까지는 굳이 하고 싶지 않았기에 괜히 실없는 농담을 건넸다.) 나 쓰러지면 네가 방까지 데려다줄 거니까 괜찮겠지.
 
정은창:그거야 그렇지. (농담에 진담으로 대답한다.) ...그래도, 쓰러질 때까지 무리하지는 마. 정 힘들다 싶으면 얘기해줘야 된다? 눈 많은 곳에서 쓰러지면 네가 제일 곤란해져. (여전히 평소의 목소리였지만 걱정이 담긴 투였다.)
 
얘기를 나누고 있자면, 문득 저 먼 발치에 있는 결혼 대상 집안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린튼 가.
 
문득 당신은 린튼 가에 관한 소문을 떠올립니다.
 
가장 명예로운 집안! 왕족과도 줄이 이어져있다 했던가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가문.
 
그러나 희한하게도 저들에 대한 정보는 많이 개방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가문 구성원조차 전부 공개하지 않으니 말 다했죠.
 
다만 조금 미친 이들이 많다 했던가? 불미스러운 소문은 그 정도입니다.
 
정은창:(이내 당신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나 고개를 돌렸다가, 미간을 팍 구긴다.) …가볼 거야? (확연하게 날 서 있는 한 마디.) 가볼 거면 다녀와. 나는 관련된 사람도 아니라서,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것 같네. …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잖아.
 
강재인:인사는 해야지. 앞으로 계속 얼굴 보면서 지내야 할 텐데. (당신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인상. 그렇게 찌푸리고 있으면 진짜 사나워보인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금방 다녀올게. (몇 걸음을 떼고는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가,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겨 린튼 가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정은창:사나워보이든 말든... (투덜거리면서 속으로 짧게 혀를 찼다가 금방 다녀온다는 말에 당신의 뒷모습을 주시하였다. 돌아보는 모습까지도.) 뒷마당 정원에 있을게.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와.
 
정은창도 금방 자리를 떠납니다.
 
정은창은 린튼 가 사람들과는 말조차 섞고 싶어하지 않는 기색입니다. 저렇게 싫어할 일인가요?
 
그래도 장인 어른 될 분도 계시고, 린튼 가는 왕족과 연관된 집안이고… 잘 보여야죠.
 
이 모든 건 결국 강재인, 당신을 위한 일이 될텐데.
 
린튼 가 사람들이 모인 곳에 다가가면 그들은 반갑게 당신을 맞이합니다.
 
“이게 누구야, 우리 새가족 될 사람 아니야!”
 
“만나서 정말 반갑네.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총명하고 영특하게 생겼군.”
 
린튼 가 사람들은 어째서인가 눈밑이 거뭇하고 대다수 낯빛이 창백합니다. 햇빛을 오래 보지 않은 사람처럼. 혹은 잠을 오래 자지 못한 사람들처럼.
 
당신이 얼추 인사를 하고 나면 그들은 당신의 배우자 될 사람을 부릅니다.
 
하퍼, 하퍼 린튼!
 
곧 부부 될 사람끼리 춤 한 번 춰야지 않겠어.
 
그렇게 나타난, 처음 마주하는 결혼 대상자는 썩 말끔하고 멀쩡한 생김새입니다.
 
하퍼 린튼: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하퍼 린튼입니다. (옅게 뜬 눈으로 가만 미소지었다.) 그쪽이... 강재인 씨인가요? 만나 뵙는 건 처음이네요. (곧 어색하게 웃더니.) 저희 가문 사람들이 좀 유난이라... 하하, 괜찮다면 한 곡 추시겠습니까. (손을 내밀었다.)
 
강재인:안녕하세요. 강재인이라고 합니다. (처음 만나는, 미래의 배우자가 될 이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런 류의 만남이 아니었더라면 더 편안한 마음으로 친분을 도모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글쎄. 그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좋죠. 잘 춘다고 하기는 어려운 실력이지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야.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이 상황에서 그를 떠올려서는 안 되는 일이겠지.)
 
하퍼 린튼:(자신도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에,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얹은 강재인의 손을 붙잡았다. 당신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알고 있다면 고의인건지. 붙잡은 게 단단하여 힘이 실려 있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제가 리드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눈웃음을 지어보여 춤을 추기 시작한다.)
 
모든 이들의 주목 속에서 배우자 될 사람과 춤을 춥니다. 미끄러지듯, 물 흐르듯 부드러운 몸짓은 그가 오랫동안 교양을 배워온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사람들의 웃음과 박수 소리.
 
모두가 이 순간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한 사람만 제외하고.
 
하퍼 린튼의 어깨 너머 정원으로 통하는 입구에서 고요하게 당신을 응시하는 정은창의 얼굴은… 무슨 표정인가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입매가 굳은 상태임은 확실합니다.
 
원하지 않음을, 이 순간을 바란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을 극렬히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하퍼 린튼을 빤히 응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감시라도 하듯이.
 
...
 
찰나입니다. 귓가에 내려앉는 속삭임.
 
하퍼 린튼: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굉장히 아끼나 봐요.
 
하퍼의 속삭임입니다.
 
하퍼 린튼:...하지만 관리는 좀 해두셔야겠습니다. 저게 사심이 섞인 거라면 저희 쪽은 썩 달갑지 못하니까. (웃으며 귓가에 속삭인 뒤에 떨어졌다. 마저 느릿하게 스텝을 밟으며.) 무슨 뜻인지 아시리라 믿어요.
 
강재인:... ... (움찔. 하마터면 스텝을 잘못 밟을 뻔 했지만 다행히도 금방 바로잡을 수 있었다. 남들의 눈에는 여전히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서투른 이에 불과했으니, 조금 더 조심하라 일러두었어야 했는데. 옅게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신경쓸 필요 없어요. 제 선에서 정리할 수 있답니다. 게다가, 제아무리 사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 한들 한낱 고용인에 불과하다는 사실, 알고 계시지 않나요.
 
하퍼 린튼: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신경 쓰지는 않겠습니다. 제 딴에서 조언을 드리자면... 고용인과 너무 친근하게 지내는 건, 좋지 않은 일이죠. 언제 기어오를지 모르는 일이라서요. 선의가 악의로 바뀌는 건 순간입니다. (중얼거리면서 입꼬리를 올려 웃음을 보인다. 그렇게 드러내는 웃음은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 당신에게 불쾌감이 문득 들었을 지도.)
 
타이밍 좋게 춤이 끝납니다. 정중히 인사한 미래의 배우자는 곧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갑니다.
 
당장 내일 부부가 될 사이인데도 함께해줄 생각이 전혀 없나 봅니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강재인:(나쁘지 않은 사람이었고, 오히려 좋은 사람에 가까운 이였지만, 왜인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정은창을 견제하는 느낌. 단순히 미래의 배우자에게 다른 남자가 있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라기에는 아무래도 지나친 느낌이 있었다. 경고를 들은 직후인지라 곧장 그에게로 향해도 될까,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를 벗어날 일은 없으니 괜찮을 것이라 여기며 정은창에게로 돌아갔다.)
 
고민 끝에 당신은 정은창에게로 돌아갑니다. 그가 있는 정원으로 향합니다.
 
시끌벅적하던 파티홀 내부와는 상반되는 분위기입니다.
 
정은창의 분위기는 아까보다 더 온화해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시간은 밤이고 달은 보름달이네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해 별이 쏟아질 듯 무수히 많습니다.
 
마침 홀에서 들려오는 음악도 바뀌는 것 같네요.
 
정은창:...왔어? (뭐가 그리 불만에 찬 걸까. 잔디만이 무수한 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가 당신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고개를 들어 호박색의 눈동자를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사나워보였던 눈매가 조금씩 내려가는 듯했고. 성큼 당신에게 다가가서.) 결혼 대상자는 잘 만난 것 같더라. (감시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먼저 얘기를 꺼냈다. 간극 끝에 당신에게 슬며시 내미는 손바닥. 하퍼의 손 동작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 당신이라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터였다.) 손. (그래도 시치미는 떼고 싶은지 짧게 이야기 했다가 자신이 마치 강아지 다루듯 말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늦게 끝말을 덧붙였다.) ... 줘봐. 아니, 줘봐요. (눈치 힐끗 보면서 답지 않게 존댓말…)
 
강재인:내가 인상 펴랬잖아. (심술을 부리는 것이 분명한 눈매를 보고 핀잔을 주었지만, 당신을 나무라는 투라기보다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역시 그와 있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아마도 이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겠지.) 으음. (작게 망설임이 묻어나는 소리를 내며 가만히 당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보통의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는 이렇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몇 명의 고용인을 거쳐왔지만, 한 번도 이렇게까지 가까워져 본 적은 없었으니까. 방금 전까지 남편이 될 이와 춤을 추고 돌아왔거늘, 이제는 그의 손이 제 앞에 내밀어져 있었다. 두 상황 중 하나는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어느 쪽이 꿈이고, 어느 쪽이 현실이기를 바라고 있는지는 단언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만약 자신이 거절한다면 그가 강요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럴 명분도 없었고. 그렇지만,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가까워지고 싶었던 것은 제 욕심이었고, 그걸 감당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정은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냥 내칠 수도 없었다. 그러다 결국,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들어주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정은창:알았어, 알았다고. 원래 이렇게 태어나서 어쩔 수 없단 말이야. (부드러운 목소리에 마음이 편해졌는지 확연하게 눈꼬리가 내려갔다. 본래의 인상 나빠 보이는 얼굴 자체를 바꿀 수 없어도, 심통 난 표정은 사그라든지 오래였다. 어쩌면, 당신을 마주해서 일 것이다. 결혼 대상자와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찾아와준 당신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속내는 나름 기뻤을지라. 당신이 조용히 하고 있으면 저 또한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제 손을 바로 잡지 않고 내려다보는 까닭을 모를 리가 없었으니. 자신은 강재인의 사용인이고, 당신은 제 주인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관계는 결코 감정으로 인하여 흔들려서는 안되기 때문에. 심지어 당신은 혼약이 잡혀있으니까. 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에 따른 대가는 정은창, 자신이 받는 게 당연했다. 화살이 날아온다면 당연히 저에게 날아오겠지. 그럼에도 당신과 달리, 망설임 없이 손을 뻗은 이유는 한 번이라도 더 추억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바래질 추억. 정은창은 그 빛바랜 추억들을 편지 모으듯 차곡차곡 쌓아 제 기억 깊은 곳에 담아둘 것이라, 그리 결심했다. 정말, 곧 마지막이잖아. … 손을 마주 잡아주면, 그는 당신을 제 쪽으로 조금 끌어당겨 가까운 거리에서 눈빛을 교환하였다. 진중해 보이는 표정. 직선을 그리는 입매. 찰나에 시선이 흔들거렸을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음악소리에 맞추어 스텝을 밟았다.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듯,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따라 걸음을 옮기는 것이 그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능숙한 솜씨였다.)
 
강재인:(막상 손을 잡고 나자 그전까지 했던 고민들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관계나 현실 따위의 문제들을 전부 차치하고 나면 남는 것은 그저, 파티홀과 달리 조용한 정원의 풍경, 그리고 맞잡은 손에서 따스하게 퍼지는 온기였다. 분명 그를 만나면 이제부턴 정말 감정을 숨기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를 전하려 했는데. 방금까지 불안하게 마음을 흔들던 약혼자의 말들은, 당신과 몇 번 스텝을 밟는 사이에 전부 까맣게 잊히고 말았다. 마치,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듯이.) ......이런 건 언제 배웠대? (제법 능숙한 솜씨에 놀란 투로 물었다. 여태 그와 춤을 출 일이 없었으니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그가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렇게까지 길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새삼스럽게도 자신은 정은창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마저도 결혼 후에는 잊으려 노력해야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은창과 눈이 마주치자, 문득 과연 내가 이 사람을 잊을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너는 나를 잊을 수 있을까. 물론 그가 자신을 잊을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그 무엇도 자신과 그의 관계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자칫하면 두 사람 모두가 위험에 노출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정은창은,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가장 먼저 타겟이 될 터였다. 그러니 그가 무표정한 자신의 얼굴에서 제 마음을 읽어내지 못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랬다가는 결국 그의 욕심이 부추겨지고 말 테니까. 그리고 그 마음은, 결코 보답받지 못할 테니까.)
 
정은창:머리 굴려가면서, 혼자 익혔어. (왜 홀로 사교댄스를 익혔던 건지, 의문을 가질 만한 대답이었다. 어쩌면 변명이었을 수도 있겠다.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 걸 수도 있겠지만, 달빛이 비치어 환한 빛이 도는 정은창의 덤덤한 표정이, 마치 제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마냥. 속을 도통 드러내지 않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몰아치던 감정을 곧대로 흘려낸 사람하고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였던 것이 정은창은 이런 스스로에게도 기이함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자신이 맞나? 수없이 질문을 되뇌었고. 대답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이런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제 방의 거울 앞에서 혼자 당신을 생각하며 춤을 연습할 때면, 이유 모를 쓸쓸함이 다가왔고 동시에 자그마한 희망도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는 이 배움을 쓰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상대는 비롯 당신일 테고. 그런 생각 속에 빠져있을 때면 다시금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면 반드시 강재인이 먼저 걸음을 뗄 것이며, 실제로 지금 또한 그러했다. 뜻대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더라도. 그들 사이에 정략결혼이라는 이야기가 오가면서 자신은 무슨 표정을 지었던가. 적어도 당신의 앞에서 보였던 솔직한, 불만스러운 얼굴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배운 것이 참 많았다. 표정 관리를 하는 법, 겉에서 속을 알아채는 방법, 말의 뉘앙스를 눈치채는, 그런. 당신이 생존하기에 필요했던 것들. 나는 그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생존법을 익혀나갔다. 너는 내게 단순한 고용인이 아니었다. 부드럽기도, 때로는 거칠기도한 목소리로 많은 것을 알려준 은인이었을지 모른다. 동시에 자신이 서 있을 공간을 만들어 준.) ...누구랑 같이 춰보는 건 처음이지만. 그래도, 제법 하지? (당신을 한 번 턴 시켜준 뒤에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놓고 싶지 않다는 듯. 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확실히 드러난. 중구난방이었다. 이 달밤의 정은창은 제 속내를 드러내기도, 감추기도 하는 게 제 자신에게도 어지럼증을 안기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행일까. 제 심정을 조절하는 그였지만 정적인 당신의 얼굴에서는 복잡한 당신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당신이 긋는 선을, 그는 결코 뛰어넘지 않았다. 아슬하게 걸쳐있을 뿐이었다. 넘을 듯, 말 듯이.)
 
◆: 춤을 추다보면, 정은창을 향해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강재인: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정은창의 목덜미에 희미한 자국이 있다는 사실만 알아차립니다. 뭘까요? 이건.
 
강재인:같이 추는 걸, 혼자서?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그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간 무얼 알려주어도 금세 받아들일 만큼 이해력이 빨랐으니까. 두 명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연습을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혼자서 연습한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기에 굳이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의도적인 회피.) 이왕 열심히 연습한 거, 나중에... 또 출 일이 생기면 좋겠네. 이 정도 실력이라면 분명 상대방도 좋아할 거야. (당신의 미래에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당신이 없으리라는 확신에서 나온 말이었다. 당신이 이 한 번의 춤을 추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준비했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날의 당신만큼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당신이 언제까지고 나와 지금 만들고 있는 이 기억 속에 머무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다소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무의식 중에 제 죄책감을 덜기 위한 하나의 방도를 떠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를 떠올릴 법한 수많은 추억들을 남겨놓고, 이제 와 전부 잊으라고 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 또 있을까. 그의 사소한 습관 하나, 행동하는 방식 하나마저도 전부 내가 만들어준 것이었는데. ... 이 모든 건, 정략결혼이라는 단어가 주변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부터 각오하던 일이었다. 진작부터 예견된 것이었고, 어릴 적부터 종종 그려보았던 미래였으며,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미래였다. 그러나 정은창에게는 분명 달랐으리라. 자의이든 타의이든, 이전부터 이 상황을 준비해왔던 자신과 달리, 정은창에게 있어 자신의 정략결혼이란 갑작스레 눈앞에 놓여진 현실이었을 터였다. 결혼식 날이 정해진 이후부터 추슬러야 했을 그의 마음은 아직 정리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미 불어날 대로 불어나버린 감정을 주워담는 일. 그것이 자신이 고용주로써 그에게 암묵적으로 떠넘긴 마지막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은창.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 이리도 낯설 일이던가. 당장에라도 춤을 멈추어버릴 듯 템포를 늦추며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정은창:좋아하겠지. 싫어하거나, 서툴다고 타박하면 분명 서운할 거야. (굳이 상대방이라 명칭한 이유를 알 수 있었기에 목소리가 조금 잠겼다. 제 안에서 피어나던 불안감과 자기 자신에게 가지던 어색함은 발을 밟아냄과 동시에 바스러져갔다. 그럼에도 잊지 못한 한 가지 질문이 있었지만. … 고용주인 당신이 건네주는, 우리 사이의 모든 것을 끝마치는 일거리. 조금만 생각해도 알아낼 수 있었다. 끝없이 피어나는 불안정한 감정을 정리하는 일. 해야만 한다고 여러 번 다짐했는데도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리 선택하지 않았는가. 마지막까지 당신의 곁에 있으리라고. 내 마지막에는 당신이 옆에 있어줄지 모르지만. 당신의 움직임이 느릿해지고, 들려오던 노래도 점차 작아지니 춤을 멈추었다. 한동안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누군가 보았을까, 이제서야 조심스럽게 둘러보는 주위. 춤을 추고 있을 때만 해도 주위가 밝았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아하니 달빛뿐, 어둑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눈앞에 선 당신만은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강재인. (음악이 끝났는데도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당신의 손을 더욱 세게 잡을 뿐이었다. 손끝이 미약하게 떨려왔다. 입술을 떼었다가, 다물기를 반복하고. 그렇게 짤은 고민이 끝난 후엔 결코 허락되지 않을 말을 꺼냈다.) 결혼, 안 하면 안 돼?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만큼 간절한, 작은 목소리가 둘만이 있는 공간을 울렸다. 작달막한 말은 귀에 향하지 않았음에도 속닥이는 듯했다. 정은창의 두 눈은 울상이었지만, 눈물을 흘릴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대답이 들려올까, 알고 있을 터인데도 애틋한 시선으로 질문하는 모습이, 현실을 마주보기 싫다는 것처럼……) 결혼하지 마, 제발.
 
강재인:(움직임이 멎고, 당신이 주위를 둘러보는 동안에도 오롯이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 손을 더욱 꽉 붙잡는 게 마치 가지 말아달라 애원하는 것만 같아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다 당신의 물음이 들려오자, 그것을 농담이라 생각하고는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렇게 할, (그렇게 할까. 장난스레 받아치며 가볍게 넘기려 했거늘, 마주본 그의 얼굴은 서글픈 감정으로 가득했다. 그 얼굴을 직시하자마자 옅게나마 웃음기가 졌던 얼굴이 굳어버렸다. 짧은 찰나, 채 걷잡지 못한 시선이 흔들렸다.) 너...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목소리에는 당황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렇게 망연히 그를 바라보기를 몇 초. 새하얗게 물들어버린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한 가지 생각만큼은 확실하게 남아있었다.)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그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는 거,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그를 타이르듯 말하며 그의 손 안에서 제 손을 빼내었다. 너무 단호하게 말했나. 지금 가장 심정이 복잡한 것은 그일 텐데, 차라리 달래주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가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마주하자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당신이 날 향한 감정을 놓지 못한다면 어떡하지. 자신에게는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이런 정략결혼 따위야 얼마든지 견뎌줄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신이, 자꾸만 내 마음을 흔든다면,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 ...선, 넘지 마. (당신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며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었다. 더 확실하게 끊어내야만 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면, 완벽하게 끊어내는 쪽이 서로에게 좋을 터였다. 여태껏 우유부단하게 자신을 향한 당신의 감정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었던 과거를 탓하며, 말투에 날을 세운 채 말을 이었다.) 내가 이 결혼을 안 하면, 나한테 남는 게 뭔데? 네가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어? 든든한 가문은커녕 아무것도 갖지 못한 네가... ... (이렇게까지 말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말은 혀 끝을 떠난 후였다.) 하퍼 린튼, 그 사람처럼, 내 위치를, 내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어?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스스로가 고통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시를 세우고 있는 것은 자신이고, 그것에 찔리고 있는 것은 당신인데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자 그의 다음 말을 마주하기 두려워져서,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굳어버린 다리를 움직여 반대편으로 걸어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
 
정은창은 그저 아무 말하지 못하며 고개를 떨굴 뿐입니다. 표정을 읽어낼 수 없었습니다.
 
이 밤이 지나면 당신은 정말 결혼식에 참여하게 되겠지요.
 
결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정은창으로부터 떠나가면, 심란함을 안은 밤이 지나갑니다.
 
이제 곧 당신은 식장에 가게 될 것입니다.
 
...
 
...
 
일찍부터 모든 사람들이 분주합니다.
 
당신을 향유로 씻기고 몸단장을 해주는 사용인들 사이 이상하게도 정은창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코빼기조차.
 
식장으로 향하는 길목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여전히 정은창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전날 밤 그런 말을 하고, 들었대도 인사는 해야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도착한 식장, 그러니까 린튼 가의 대저택의 분위기가 입구에서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묘하게 풍기는 기묘한 서늘함. 어디선가 나는 미미한 시큼한 냄새에 기시감이 듭니다.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 속,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것도 같습니다.
 
결혼식을 할 곳인데 이렇게 장례식 같을 일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식장으로 들어가나요?
 
강재인:(...그런 말을 들었으니 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기로 했다. 언젠가는 했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대저택 앞에서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식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발을 들여 내부를 살펴보면 홀 쪽이 소란스러움을 깨닫습니다.
 
유난히 사람들의 말이 뒤섞이는 가운데, 묘한 한 단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소란스러운 장소로 다가가면 린튼 가의 부인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부인의 남편 또한 넋이 나간 기색입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당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제 마주한 당신의 예비 배우자. 하퍼의 시체입니다.
 
◆:이성 판정.
 
강재인: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감소 없음.
 
◆:경찰들이 분주하게 현장을 검거하는 가운데 한 경찰에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강재인:... ... (마음을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경찰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하퍼 린튼의 예비 배우자... 강재인입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고 싶은데요.
 
말을 걸면 경찰은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동정의 시선을 건넵니다. 그리고 경찰모를 살짝 들어올리며 힘이 들어간 문장을 내뱉습니다.
 
경찰: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하퍼 린튼 씨가 살해당했습니다. 사인은 총살입니다. 두 시간 전, 부엌에서 일하던 사용인들이 총 소리를 듣고 뛰어왔을 때 이미 목숨이 끊어진 상태였다더군요. 총살이니 빼도 박도 못하고 살인 사건이라 할 수밖에요.
경사로운 결혼식 날 이런 일을 겪게 되심에 진심으로 유감을 표합니다.
 
◆:살인 현장을 둘러봄이 가능합니다. 비록 경찰과 린튼 가의 사람들이 있지만 갑자기 배우자를 잃은 새 가족이 충격에 점철된 낯으로 조금 살핀다 하여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겁니다.
 
현장은 1층 응접실로, 카펫 위에는 쓰러진 하퍼 린튼-당신의 배우자 될 사람-의 시체가 있습니다.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린튼의 시체, 카펫, 열려있는 창문, 장식장 정도입니다.
 
강재인:(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애써 참아내며 시체를 먼저 살폈다.)
 
총살 당한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채입니다. 눈도 채 감지 못했습니다.
 
확실히 죽이려는 셈이었던 듯 머리 쪽에 피가 흐르는 것이 정확히 머리를 쏜 모양입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손에 쥔 것을 빼내려면, 은밀행동 판정.
 
강재인:
은밀행동
기준치: 75/37/15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빼보면 찢어진 쪽지입니다.
 
쪽지를 펼치자 거미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마주합니다.
 
이건 도대체 뭘까요? 난데없이 왜 거미?
 
강재인:(쪽지를 챙기고 창문 쪽을 확인했다.)
 
창문 근처에는 마침 경찰이 있습니다. 조심해서 살피면, 창가에 신발 자국이 남아있는 것이 보입니다.
 
크기는 성인 남성의 평균 크기 정도네요.
 
…어쩐지 익숙한 크기입니다. 저 신발 자국도요.
 
강재인:...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를 지워내고 장식장을 살펴보았다.)
 
문득 바라본 장식장은 한쪽 문이 미미하게 열린 채입니다.
 
열린 틈 바로 앞에 존재하는 것은 린튼 가의 가족 사진들이 모인 액자, 입니다만… 뭘까요?
 
유독 큰 액자 안 사진이 빠져 있습니다. 누군가 억지로 빼간 느낌입니다.
 
강재인:(액자를 바라보던 시선을 카펫으로 옮겼다.)
 
카펫은 핏자국으로 너덜합니다. 그 위에는 여러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습니다.
 
딱 봐도 고급 재질, 비싼 카펫 같은데. 관리도 어려울 것이 피로 적셔지다니 이 방면에서도 난감한 일이군요.
 
◆:관찰력 판정.
 
강재인: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강행 가능합니다.
 
강재인: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떨어진 탄피를 발견합니다. 매그넘 계열. 리볼버에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딱 봐도 이게 불쌍한 피해자를 죽인 무기겠죠.
 
얼추 둘러보고 나면, 경찰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정말 심각한 얼굴입니다.
 
이 망한 결혼식날 당신을 집에 귀가시키기 위해 하인들이 분주해지는 가운데 코앞에 도달한 경찰이 신중하게 묻습니다.
 
강재인:(경찰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오자 경계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정은창이요? 갑자기 그 이름이 나오는 이유가 뭐죠? (눈을 가늘게 뜨고 경찰에게 되물었다. 허튼 말을 했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경찰: 강재인 씨 집의 고용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루종일 보이지 않았다면서요? 정원사가 1층 응접실을 빠져나가는 인영에 대한 의상착의를 묻고 다니니 모두 정은창과 비슷하다 증언하길래 말입니다. 혹 오늘 정은창이 이 시각에 어디 있었는지 아십니까?
 
강재인:네, 그건 맞지만... 착각일 겁니다. 세상에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한둘인가요? (일단 경찰의 말을 부정하고 보았다. 그가 살인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자신이 보아온 정은창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모릅니다. 제가 모든 고용인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알 만큼 한가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경찰: 일단 진위 여부는 좀 더 조사해봐야 아는 일이긴 합니다.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시고요. ...알겠습니다.
 
경찰은 심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일단 수긍하고 돌아섭니다.
 
아무래도 당신의 집까지 함께할 예정인 모양이네요. 정은창을 찾기 위함이 분명합니다.
 
찜찜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그러나 어쨌든 확실한 사실은 이 결혼은 이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살인 현장에 오늘의 주인공이 더 머무를 이유는 없습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워야 할 날이 바닥으로 추락함에 모든 이들이 슬퍼합니다.
 
귀가하는 마차가 준비되는 가운데, 하퍼 린튼의 부모님 되는 사람들이 망연히 앉아있다 당신을 응시하는 게 느껴집니다.
 
무어라 위로의 한 마디라도 전함이 좋을까요?
 
강재인:(잠시 그들을 마주 바라보다가, 이내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었다.) 이번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부디 조심히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심심한 위로의 말 뿐이었지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들은 당신이 무어라 말해도 대답 없이 당신만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지 않습니다.
 
어쩐지 그 태도가 다소 기형적이라 느껴질 지경입니다.
 
이만 자리를 뜨고자 하여 린튼 가의 저택을 나서자, 어디선가 강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시선이 느껴지는 장소는 린튼 가 저택 한구석에 있는 풀숲 속.
 
◆:관찰력 판정.
 
강재인: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하얗고 벌레처럼 생긴 무언가가 당신을 응시하다 사라짐을 발견합니다.
 
자세히 살필 여유는 없습니다. 준비된 마차에 당신은 올라탑니다.
 
엉망이 된 식장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온 집안은 그야말로 난리입니다.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도 심지어 결혼 대상이.
 
당신은 어떤가요? 괜찮나요?
 
괜찮든, 괜찮지 않든, 지금 이 상황에서 정은창이 미심쩍은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당장 경찰이 한 말만 봐도 말이에요.
 
하지만 설마, 정은창이? 그렇게 극단적인 성격이었나? 일단 두 사람은 꽤 알아온 사이잖아요?
 
방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는 가운데 창밖으로부터 정은창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인들이 뛰어나가 도대체 여태까지 어디 있었냐며 소란을 떨고 있습니다.
 
정은창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심부름을 다녀왔노라 답하는 게 시야에 잡힙니다.
 
◆:정은창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갈까요?
 
강재인:(혼자 머리를 싸매기보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설령 그가 정말 살인을 저질렀다 한들, 자신에게는 진실을 고해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에서였다. 1층으로 걸음을 옮겨 그를 찾았다.)
 
1층으로 내려가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정은창의 모습이 보입니다.
 
시내에 주문 받은 물건을 사러 나갔고, 그 위치는 린튼 가 저택과 정반대에 있습니다.
 
물건을 산 영수증과 구매한 상인까지 증인으로 내세우자 의심스러운 낯을 하고 입구를 지키던 경찰 몇이 결국 수긍하곤 철수합니다.
 
그럼 그렇죠. 정은창이 사람을 죽일 리 없잖아요. 그것도 단지 당신이 결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런데 왜이리 찝찝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정은창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정은창은 언제나와 같습니다. 평상시 짓던 그 표정입니다. 다를 바 하나 없어요.
 
그는 가진 짐을 잠시 두고 보다 확실히 자신에 대해 변호하기 위해 자리를 뜹니다.
 
◆:그 사이 정은창의 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짐가방 안에는 심부름과 무관해보이는 신문이 한 장 들어있습니다.
 
강재인:(그의 짐 안에서 신문을 꺼내 펼쳐보았다.)
 
신문을 꺼내보면 1면부터 린튼 가와 당신의 집안의 결혼 소식으로 떠들썩합니다.
 
이제 내일 신문에는 하퍼 린튼의 부고 사실이 실리겠죠.
 
◆:자료조사 판정.
 
강재인:
자료조사
기준치: 75/37/15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일정 페이지에 사망, 실종자 명단이 적혀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명단을 보면 꺼림칙한 기분이 듭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이내 정은창이 당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정은창:(신문을 읽고 있음에 큰 신경을 쓰지 않으며, 눈을 데굴 굴리다가 곧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쳐다보는 걸 망설인 이유는 어젯밤에 들은 경고 내지 저를 경계했던 말 때문일지라. 이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할지라도, 당장 당신이 걱정되었다. 고민이 끝난 후에는 약간 슬퍼 보이는 눈길이 이어졌고.) ...얘기 들었어. 하퍼 린튼이 살해당했다면서. (고정된 시선은 조금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 당신의 상태를 살필 뿐이었다.) 하필이면 왜 오늘, 그런 일이 일어난 거야. (안타깝다는 말투였지만 비통하거나 괴롭게 들리지는 않았을 터. 아랫입술을 약하게 잘근거리고.) 너는 괜찮아? 시체를 직접 봤다고 들었어. 충격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강재인:(살인자로 몰린 사람치고는 평소와 다름없는 침착한 태도에 하려던 말을 속으로 삼켜내었다. 그제야 어젯밤 했던 이야기들이 다시 떠올라 어색한 티를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긴 했지만... 괜찮아. (잠시 머뭇거리다가 본래 하려 했던 이야기를 꺼내었다.) 경찰이 네 행방을 물었어. 범인의 인상착의와 네가 비슷하다면서... (왜 하필 오늘 내 곁에 있지 않았던 거야. 어째서 평소와 달리 제 곁에 있지 않았는지, 가장 확실하게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말았는지 물을 수는 없었다. 그가 오늘 내내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어제 했던 모진 말들 때문일 테니까.)
 
정은창:괜찮다니 다행이네. (당신의 말에 그제서야 걱정 어린 눈빛을 치워내었다. 이어지는 말에는 찰나 몸이 굳었지만, 이미 알고 있다는 양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아까 경찰이 와서 설명해 줬어. 내가 용의자로 몰리고 있다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자신을 믿고 있냐는 말은 쉽게 꺼내지 못했다. 의심하지 말아달라는 부탁까지도. 당신이 저를 미심쩍게 생각한다 해도 말릴 생각이 없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전날에 대놓고 결혼을 못마땅히 여기지 않았나. 결혼하지 말라고. 꼬여버린 머릿속을 정리한 뒤에 이윽고 조심스레 흘리는 말.) 오늘은 푹 쉬어. 무리하지 말고. 그간 피곤하기도 했잖아. (진행되었던 결혼식 일정을 뜻하였겠지만, 지금 상황에 탓할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말을 정정하였다.) …정확히는, 오늘 일이 더 힘들었겠지.
 
강재인:충격을 안 받았다고는 못하겠지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당신의 안색을 살폈다.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지도.) 응, 너도 좀 쉬어두는 편이 좋겠다. 나중에 경찰이 다시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당신을 대놓고 의심할 수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었기에 애매한 태도로 일관할 뿐이었다. 내가 보아온 정은창은 그럴 사람이 아니기는 했지만, 결혼을 하지 말라고 말하던 정은창도 평소와 똑같았다고 말하기에는 분명 어폐가 존재했다.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따로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이미 자라나버린 의심의 싹을 거두기에는 부족했다.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네가 정말 범인이라면...) 정은창. (나지막이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아니지? 네가 벌인 짓, 아니지?) 혹시...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아니, 해야 할 말 있어?
 
정은창:쉬기는 뭘 쉬어. 남은 일 마무리해야지. (결혼식이 파투남과 동시에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게 분명했다. 머쓱하게 제 뒷머리를 쓸어내리고는 당신의 눈을 잠시 피했다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다시 되돌아보았다. 보랏빛의 눈동자는 어쩐지 피곤해 보이고, 지쳐 보여서. 용의자로 몰렸던 게 그리 힘들었던 일이었을까. 혹은 다른 이유가 있을지. 해야 할 말이 있냐는 말에는 입술을 이로 짧게 짓눌렀다가, 기어들어가는 어조로 언어가 되지 못한 것이 흘러나왔다.) 그…… (뻣뻣하게 굳은 다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옅은 한숨을 내쉰 뒤에야 입이 오물오물 움직였다.) ...미안해. 어제, 괜히 그런 말을 해서. 너를 귀찮게 만들었겠지. (혼란을 주기에도 마땅했고. 짧게 건넨 사과에는 확실한 후회가 담겨있었다.)
 
강재인:오늘만큼은 그냥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쉬어. 내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하면 다들 알아들을 테니까, 괜히 무리하지 말고 내 말 들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건지. 억지로라도 당신을 쉬게 할 생각이었다.) ... (한참 동안의 망설임 끝에 이어지는 당신의 말에는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어젯밤 일에 대한 사과를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는데.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어차피 이렇게 파투나버릴 결혼식이었다면, 그런 말까지는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을. 이제 와 후회해보아야 늦었지만, 그런 핑계로 마음을 짓누르는 죄책감을 덜어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마음을 입 밖으로는 차마 내지 못하고 가볍게 손짓을 할 뿐이었다.) ...그만 들어가봐. 나도 좀 쉬어야겠어.
 
정은창:그래주면 고맙긴 하겠지만. (저 혼자만 쉬게 되는 게 영 마음에 걸리긴 한가보다. 휴식이 크게 익숙하지 않을 수 있겠다. 해야할 일이 있다면 항상 도맡아 했었으니까. 그래도 확실히 피로한 건 맞았기에 특별히 반박하거나 사양하지는 않았다. 당신의 무거운 침묵이 자신까지 바닥으로 누르는 것 같아, 순간 긴장감이 돌기도 하였다만 이내 보이는 손짓에 굳었던 표정을 풀고 알아들었다는 듯이 제 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당신에게서 떠나기 전. 당신에게 전하는 거라고는 너무나도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을 뱉어내었다. 그럼에도 당신이 들을 수 있을 법한 크기였다.) ... 다 운명이겠지. (그 마디를 끝으로 뒤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정은창은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당신도 쉬기 위해 방으로 돌아갑니다.
 
밤이 늦었습니다. 엉망이 된 결혼식날이 이렇게 저뭅니다.
 
.....
 
.....
 
문득 문틈으로 빛이 비춰졌다 사라지는 것을 밤잠 설치던 당신은 발견합니다.
 
복도로 나가면 끝에 위치한 정은창의 방이 불이 켜진 채 열려 있습니다. 안 자고 여태 뭘 하는 걸까요?
 
◆:정은창의 방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강재인:(조용히 그의 방 쪽으로 다가가보았다.)
 
내부엔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흐트러진 물품이 바닥에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나요?
 
강재인:(주변을 살피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흐트러진 물품이 바닥에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이 늦은 밤까지 뭘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리는 하고 살라 잔소리를 해야 할 대목인가 싶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정은창의 자필로 무어라 적힌 [수첩]입니다.
 
강재인:(수첩을 주워 펼쳐보았다.)
 
펼쳐보면, 적힌 건 이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전부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익숙합니다.
 
왜?
 
◆:지능 판정.
 
강재인: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강행 가능합니다...
 
강재인: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것이 신문에 적힌 실종, 사망자들의 이름과 일치함을 깨닫습니다.
 
수첩을 넘기면 가장 마지막 부분에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익숙한 이름을 발견합니다.
 
하퍼 린튼.
 
수첩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찰나 발치에 무언가 걸립니다.
 
탄피입니다.
 
리볼버의 탄피, 쓰지 않은 탄피가 굴러왔습니다. 근원지를 살피니 침대 밑입니다.
 
정은창이 없는데 멋대로 살펴도 되는 걸까요? 그러나 찝찝함이 가시질 않습니다.
 
강재인:(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그렇게 겨우 마음을 다잡으며 침대 밑을 살펴보았다.)
 
◆:관찰력 판정.
 
강재인: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무언가 있을 법도 한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뒤적여볼까요.
 
강재인:(눈을 가늘게 뜬 채 힘을 주어 침대 밑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침대 밑을 자세히 바라보면, 문득 공책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내부를 펼쳐보면 6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거미 그림.
 
이건 분명 하퍼 린튼의 시체가 쥐고 있는 쪽지 속 그림과 동일한 것입니다.
 
옆에 적힌 글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거래자.
 
...
 
문득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강재인:(밖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몰래 빠져나가는 대신 공책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수첩도 원래대로 놓아두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바꾸었다.)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고 나면, 정은창이 방으로 들어오다 당신을 보고 놀란 낯을 합니다.
 
잠옷 차림의 정은창은 반팔을 입고 있습니다. 그렇게 드러난 팔은…….
 
온갖 상처로 가득합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싶을 만큼 깊은 흉터들입니다.
 
당신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눈치 챈 그가 빠르게 겉옷을 챙겨 입겠지만 이미 늦었죠. 모든 걸 봐버린 뒤인데.
 
정은창:(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긴팔 겉옷을 급히 챙겨 입지만, 흉터를 들켰다는 사실에 말을 더듬거렸다. 무어라 변명이라도 꺼내려 했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아 그저 고개를 살짝 떨굴 뿐이었다. 괜히 한 손으로 제 반대쪽 팔을 잡고 떨리는 음성을 겨우 진정시켜.) ...아무리 너라도,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는 건 썩 좋지 않은데. (경계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불만을 표하기에는 당황스럽다는 티가 너무 나버렸기에 정은창은 금방 후회 속에 빠졌다. 소리 없이 목을 가다듬고.) 무슨 일이야?
 
강재인:잘 쉬고 있나 보려고 왔는데, 방이 엉망이길래 정리나 좀 해줄까 하고 들어왔어. (당신과는 달리 쉽게 거짓말을 하고는 당신의 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저택 안에서 저렇게 상처를 입을 만한 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밖에서 쌈박질을 하고 다닐 리는 없었기에 짚이는 구석은 전혀 없었다.) ...길게 말 안 해. 설명해. (굳은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무엇을 설명하라는 건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터.)
 
정은창:그건…… 정리해둘 걸 그랬네. (당신 말에 멋쩍은 듯 자기 목덜미를 매만졌다가 설명하라는 말에는 입을 꾹 다물었다. 딱 보아도 변명거리를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절대 들키지 않으리라 판단했던 건지. 가정 하나 세워두지 않았던 것인가.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당신의 딱딱한 표정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미친... (운을 떼었다가 끝을 흐렸곤, 오해의 소지가 생길까 싶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미친 사람이 달려들어서, 싸우다가 이렇게 됐어.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야. 항상 긴팔을 입고 있었으니까, 네가 모를 만도 하지. .(믿기 어려운 이야기인 걸 그 자신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변명을 고집하는 건, 제발 넘어가달라고 처량하게 비는 행위와 같았다. 내 의도를 모를 리가 없잖아.)
 
강재인:왜...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터무니없는 핑계를 대면서까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게 거짓이라는 사실을 내가 금세 알아챌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속을 짐작할 수 없는 당신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려는 듯 시선을 고정했다. 대답을 강요하기라도 하듯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당신에게로 두어 걸음 다가갔다.) 나한테, (당신의 팔을 손으로 꽉 붙잡고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손아귀에 힘을 주며 눈을 똑바로 마주친 채 낮은 음성으로 당부했다.) 무언가를 숨길 생각 하지 마, 정은창. 영 피곤해보이니까 이번엔 그냥 넘어가 주겠지만..., 다음은 없어.
 
정은창:(제 팔을 세게 붙잡자 몸이 흠칫, 하고 떨렸다. 저를 올려다보는 눈. 지금만큼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흔들리는 동공으로 바라보았다.) 숨기려는 게 아니야. 그저… (지금은 때가 아닐 뿐이라서. 이어짐은 속으로만 읊어내었다. 다음이 없다는 말. 그다음이 찾아온다면 너는 나를 괴롭게 만들까. 결코 열지 않을 입을 억지로 벌려내면서, 어떤 진실이라도 흘려내길 유도할 것인가. 그 진실됨이 두 사람을 상처 입힌다 하더라도. 정은창은 당신의 성격을 모르지 않았다. 여기에서 반항한다면 충고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시야를 내리깔았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밤이 늦었어. (부디 나가주면 좋겠다는 의미로, 꺼져들어가는 소리였다.)
 
강재인:(기어코 시야를 내리까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붙잡고 있던 팔을 놓았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니었는데. 어제부터 계속해서 무언가가 엇나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만큼.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도 없는 - 물론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하기엔 어려웠으나, 표면적인 사실로는 - 관계였는데, 벌써 몇 번이나 그에게 상처가 될 법한 말들만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날 선 태도를 잠자코 받아들이면서도 말도 안 되는 변명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터. 그렇다면 어째서 계속 믿을 수 없는 말들만을 반복하고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벌써 몇 차례 반복되는 이 엇갈림은 우연일까, 혹은 필연일까.) ... ...잘 자. (의미 없는 인사를 건네고는 방을 나섰다.)
 
당신이 완전히 나가기 직전, 정은창은 자리에서 멈춰서 조용히 말합니다.
 
정은창:...만약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그 때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어?
 
갑작스러운 말입니다. 정은창은 이내 고개를 젓고 자신이 헛소리를 했다며 마주 밤 인사를 합니다.
 
당신의 어떠한 대답도 듣지 않고 그는 서글퍼 보이는 표정으로 방문을 닫습니다. 완전한 단절.
 
아침이 옵니다.
 
...
 
...
 
아침부터 집안이 분주하면서도 침잠한 이유는 어제의 살인 사건 때문일 겁니다.
 
오늘은 린튼 가의 사람들이 오기로 했습니다. 두 집안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함이겠죠.
 
◆:린튼 가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당신은 부엌, 휴게실, 뒷마당에 갈 수 있습니다. 뒷마당은 마지막에 가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강재인:(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엌]
 
하인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그런 일이 있음에도 산 자들은 음식을 먹고 살아가기에 맛있는 냄새가 만연합니다.
 
하인들은 당신이 온 줄도 모르고 저들끼리 무어라 떠들고 있습니다. 은밀한 이야기를 하듯이 속닥속닥.
 
◆:듣기 판정.
 
강재인: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하인1: 린튼 가 사람들이 가문 구성원도 공개하지 않는댔잖아? 그런데 소문에 따르면 이번에 죽은 하퍼 린튼 씨가 마지막 후계자였다더라.
 
하인2: 그럼 뭐야? 그 부부만 남은 거야?
 
하인1: 글쎄, 아직 일가 친척이 몇 살아있긴 했다는데 전부 죽으면 대가 끊기는 거겠지…….
 
이러한 대화를 듣습니다. 하인들은 당신이 왔음을 눈치채고 금방 제 할일을 하러 갑니다.
 
강재인:(발걸음을 돌려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
 
휴게실은 고요합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만 되어 있을 뿐입니다.
 
◆:탁자, 벽난로를 살필 수 있습니다.
 
강재인:(탁자 쪽을 먼저 확인했다.)
 
탁자를 보면 손님 수에 맞게 놓인 찻잔이 있습니다. 손님용은 두 개.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오늘자 신문이네요.
 
1면에 하퍼 린튼 살인 사건이 보도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죠.
 
용의자가 몇 추려졌으나 모두 알리바이가 있어 사건은 미궁 속에 빠져드는 중이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정은창.
 
머릿속을 스치는 이름입니다. 정은창.
 
강재인:... (찜찜한 마음을 구석으로 미루고 벽난로를 살펴보았다.)
 
벽난로 안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방금 막 장작을 넣었는지 타닥타닥, 잘도 탑니다.
 
…응?
 
문득 벽난로 안쪽에 타다 만 종이조각이 존재함을 깨닫습니다.
 
벽난로 옆에 놓인 부지깽이로 종이조각을 꺼낼 수 있습니다.
 
강재인:(부지깽이로 조심스레 종이조각을 꺼내보았다.)
 
종이 조각을 꺼내면 기묘한 글자들이 일부 적혀있습니다.
 
<아이호트의 거래>, <숙주에 관하여>. …이게 뭘까요?
 
◆:이성 판정.
 
강재인: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적혀 있는 몇 가지 띄엄띄엄 적힌 단어만 겨우 읽습니다. …전염을 통한… 지배…….
 
…그리고 그 아래에 그려진 소름끼치는 거미 그림…….
 
문득 카펫 아래에서 삐죽 튀어나온 종이를 발견합니다.
 
강재인:(종이를 꺼내어 확인했다.)
 
어디 책에서 뜯어온 듯한 종이 한 장입니다. 꺼내 내용을 살피면 암호처럼 무어라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부 지역입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 최종적으로 이곳에 머무름.
 
가장 마지막에 적힌 글자는 명백한 암호라, 확실하게 읽기 어렵습니다.
 
◆:교육 혹은 지능 판정.
 
강재인: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필체가 정은창의 것임을 깨닫습니다.
 
강재인:(마지막으로 뒷마당으로 향했다.)
 
[뒷마당]
 
뒷마당에는 마당 정원을 가꾸는 정은창이 있습니다.
 
잠잠한 낯입니다.
 
정은창:(물뿌리개로 꽃에 물을 주다가 당신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 왔구나.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한 손을 들어 제 볼을 긁적이곤,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고민하였다.) ... 내가 지금 물 주는 꽃, 에리카라고 불러. 다르게는 히스라 부르고. (이내 벤치에 올려두었던 자신이 만든 에리카 꽃다발 두 개 중 하나를 들어 당신에게 내밀었다.) 하나는 린튼 가 사람들에게 위로의 의미로 줄 거고. 이건 너한테 주는 거야. (여전히 침착한 표정이었다. 어젯밤에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에 대한 미안함을 비롯해서, 어쩌면 무례했을 법한 자신의 행동을 만회하려는 의미였다. 또한 둘만의 비밀을 지켜달라는.)
 
강재인:(말없이 당신을 바라보다가, 이내 당신이 건넨 꽃다발을 받았다. 꽃다발을 한 번, 그리고 당신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를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제 깜빡하고 말을 못 했는데, 방 정리는 좀 하는 편이 좋겠더라. (돌려서 말하기는 했으나,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말을 한 것은 며칠 간 차갑게 대했던 것에 대한 사과나 다름없었다. 최근 수상쩍게 굴기는 했지만서도, 늘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당신이 저에게 해가 될 만한 짓을 했을 리가 없다는 믿음은 여전히 존재했기에.) 린튼 가 사람들이 너를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네. (네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니까. 당신 역시도 잘 알고 있을 사실이기에 굳이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정은창:(당신이 꽃다발을 받자 얼굴빛이 약간 환해지는 듯했다. 당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래도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처럼 들려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이제 곧 바쁜 것도 끝나서, 정리해야지. … 그건 그래. 의심받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밤 동안 생각해봤거든. 마음에 들던 가문은 아니지만, (시선을 잠시 굴린다.) …자식분을 잃었잖아. 얼마나 슬플 지 상상도 안 가. 나라도 조금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그쪽이 나쁘게 받아들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목소리는 조금의 슬픔이 담겨있었다. 불쌍하다는 듯이. 거기까지 말하고 침묵했나. 당신을 평온한 낯으로 주시하며 꺼내는 부탁은 방금과는 완전히 다른, 무거운 투였다.) 너한테 따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들어줄 수 있을까?
 
강재인:그래도, 네가 그쪽의 반응에 상처받진 않을 것 같아서 안심이네. (사실 린튼 가 사람들의 슬픔 따위의 문제보다도 걱정이 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두 가문의 관계라던가, 계속해서 의심을 받게 될 정은창의 입장이라던가.) ...걱정했거든. 혼자 앓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사람을 죽여놓고 이렇게 침착할 수는 없을 텐데. 미심쩍은 정황이야 많았지만, 그래도, 자신만큼은 그를 믿어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일순위로 생각하는 자신과는 달리, 이런 상황에서도 남을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당신이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졌을지도 몰랐다.) ...무슨 이야기인데 그렇게 뜸을 들여? 그렇게 중요한 얘기야?
 
정은창:걱정 안 해도 됐는데. (다만 홀로 앓는다는 말은 부정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으니. 어느 순간부터 썩혀가던 제 속은 이제 곪아있을 수도 있겠다. 당신이 들고 있는, 자신이 건네준 에리카 꽃다발을 유심히 보다가 남은 한 꽃다발을 손에 들어 올렸다. 보랏빛의 꽃들이 옅게 부는 바람에 따라 흔들렸다.) 중요한 이야기는 맞아. 네가 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사이. 뒤에 꺼내는 이야기는 도통 의미를 모를 만한 것이었다.) …침대 밑에 여분의 권총을 준비해뒀어. 내가, 여기를 떠나게 된다면 그걸 들고 찾아와줘. 부탁할게.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요. 뭘 의미하는 이야기인가요?
 
정은창은 곧 꽃다발을 든 채로 자리를 떠납니다.
 
바깥에서부터 손님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인이 찾아와 자신들이 먼저 응대할 테니 잠시 방에 가 있으셔도 된다고 이릅니다.
 
◆:방으로 돌아가나요?
 
강재인:(하인의 말대로 잠시 방에 있을 요량으로 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
 
탕.
 
명백한 총 소리입니다. 근원지는 현관.
 
강재인:(정은창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방으로 향하던 중, 총소리에 화들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한낮에, 그것도 저택에서 총소리라니. 다급하게 현관으로 걸음을 돌렸다.)
 
급하게 현관으로 향하면,
 
그곳에는 피가 묻은 에리카 꽃다발을 든 정은창이 있습니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악에 물든 낯으로 정은창을 응시합니다.
 
정은창의 손을 보면, 그래요.
 
리볼버. 리볼버가 쥐여져 있고,
 
그리고…….
 
바닥에는 린튼 부부의 시체가 쓰러진 상태입니다.
 
◆:이성 판정.
 
강재인: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강재인, 이성 1 감소.
 
피가 튄 뺨을 든 정은창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어쩐지 이 현상이 익숙한 얼굴.
 
낯에는 슬픔이 번져 있습니다. 숨을 뱉은 그가 소리 없이 발음한 건 당신의 이름입니다.
 
강재인, 강재인.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그 중얼거림.
 
누군가 외칩니다. 날카로운 비명입니다. 살인자! 살인자야!
 
사용인들이 뛰쳐나가 정은창을 제압하고 총을 뺏어듭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분주한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 정은창은 단 한 번의 반항도 없이 순순히 무릎이 꿇렸습니다.
 
추락한 꽃다발이 무참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의해 짓밟힙니다.
 
망가지고 뭉개진 꽃이 지금의 정은창 같습니다.
 
마침내 고개를 떨군 정은창의 어깨 너머 경찰이 들이닥칩니다. 정은창을 구속하고 끌고 나가는 과정이 슬로우 모션처럼 펼쳐집니다…….
 
그 가운데 문득 마주친 정은창이 입을 벙긋댑니다.
 
권총.
 
침대 밑에 여분의 권총을 준비해뒀어. 내가, 여기를 떠나게 된다면 그걸 들고 찾아와줘. 부탁할게.
 
마침내 연행되는 정은창이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납니다.
 
....
 
어떻게 할까요, 강재인. 지금부터 당신의 선택이 오롯이 모든 걸 결정할 텐데.
 
강재인:(피 묻은 꽃다발, 리볼버, 그리고 그곳에 서있는 정은창. 그 모든 광경을 마주하자마자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망연히 정은창이 체포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정상적으로 호흡을 내뱉을 수 있었다. 그가, 정은창이, 정말로? 그 전의 사건도, 정은창이? 꼬여버린 머릿속을 도무지 정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빠르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려 애쓰며, 일단은 그 끔찍하기 그지없는 자리를 벗어났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걷다가, 결국 향한 곳은, 정은창의 방이었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단순히 내가 결혼하는 것이 싫어서?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 해가 되는 짓을 했을 리가 없어. 어쩌면 이 가정마저도 틀렸을 지 몰랐지만, 그 만약의 경우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실낱같이 이어지는 믿음을 겨우 붙잡으며, 그가 말한 권총을 찾아내려 급하게 침대 밑을 더듬었다.)
 
침대 밑을 뒤져보면, 정말 그가 말한대로 여분의 권총과… 상자를 발견합니다.
 
상자는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발견도 하지 못할 정도로.
 
꺼내 뚜껑을 열려 하면 비밀번호가 걸려 있습니다. 다이얼을 돌려 입력하는 방식입니다.
 
단 하나의 숫자면 되는데. 뭐라고 입력해야 할까요?
 
강재인:(상자의 다이얼을 돌려 6을 입력했다.)
 
6을 돌리면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에 돌돌 말린 양피지가 놓여 있습니다.
 
꽤나 낡았고, …예사 종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종이를 펼치면 한 호텔의 주소가 적혀있습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귀퉁이에는 린튼의 성을 단 몇 명의 이름이 동그라미 표시되어 있네요.
 
그리고 <시간을 돌리는 주문>이 귀퉁이에 적혀있습니다. 그 방법은 타살.
 
▶:< 시간을 돌리는 주문 >
[자신에게 주문을 건 술자가 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 시간이 특정 지점-최대 한 달 전으로 돌아간다. 술자가 죽인 이들은 돌아가는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과거에 도달해도 여전히 죽은 사람이 된다. 이 과정에서 얻은 상처 또한 그대로 육체에 보존된다.]
[고로 타살이 아닌 자살을 할 경우 술자 또한 시간을 돌리지 못하고 사망에 이른다.]
 
◆:이성 판정.
 
강재인: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강재인, 이성 1 감소.
 
떠오르는 정은창의 몸에 나 있던 상처들……. 설마.
 
설마.
 
◆:권총을 챙기는 것은 자유입니다. 정은창은 가까운 경찰서에 구금되어 있을 것입니다.
 
강재인:(양피지를 읽고 나자 혼란스러움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보태지는 기분이었지만, 일단은 정은창의 말대로 권총을 챙겨 경찰서로 향했다.)
 
당신이 피해자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관계임을 아는 경찰들은 면회를 허락합니다.
 
정은창은 고개를 숙인 상태입니다.
 
정은창:…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철창 안 제자리에 마냥 서 있었다. 당신의 기척이 느껴지자 그제서 고개를 살짝 들고 마주하였다. 한 발자국 다가서고, 이상 가까워지지 않았다. 언젠가부터였나. 피로에 잠긴 눈을 하던 건. 여전한 시선이었다. 히스 꽃과 같은 보랏빛을 띠고 있는 두 눈동자로, 맹목적이며 헌신적인 태도로 당신을 바라보는 게.) 찾아와줬구나.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에서야 지어 보이는 미소였다. 그 마저도 금방 가라앉고 말았지만.) 총은, 가져왔어? ……방아쇠도 당겨줄 거지. (이내 다무는 입. 핏기 하나 없는 입술이, 끔찍할 정도로 묵묵했다.)
 
강재인:(입을 꾹 다문 채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발짝, 그러나 그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 당신을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마주한 눈빛이 여전히 맹목적이고 헌신적이어서, 그래서 더욱 마주하기 고통스러웠다.) ...왜야?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제 질문이 진정 설명을 요구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이런 짓에 이유 따위가 있기나 한 걸까.) 널... 너를 믿고 싶어.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네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게 해줘. (쓴웃음을 짓는 당신과는 달리,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낯으로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를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 그가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만큼, 그가 자신에게 진심을 다했던 만큼, 자신 역시도 이미 그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고 있었으니까.) 그런 부탁을 내가, 한마디의 설명도 없이 들어줄 리가 없다는 거 알잖아... (그러니까, 대답해줘.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줘.)
 
정은창:(다물고 있던 입술을 슬며시 깨물었다. 당신이 슬픈 표정을 하자 망설이는 것만 같았다. 눈동자가 흔들렸고,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들어 올렸다.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었음에도 작은 신음소리만이 짧게 흘러나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일련의 행동은 길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는 당신의 기다림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전부 너를 위해서였어. (작달막하게 속삭이는, 악의나 당신을 탓하는 것 하나 담기지 않은 목소리. 나는 중요치 않았고, 네가 더 중요했다는 것처럼 뱉어낸 그 말은 진심이 새겨져 있었다.) 너를 위해, 시간을 몇 번이고 돌려 모조리 죽여버린 거야. (죽였던 만큼, 난 죽었고. 덧붙인 문장에는 슬픔 하나 담겨있지 않았다. 이게 당연한 이치이며, 순리라 주장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당신을 바라보는 눈길은 어떠한가. 비통함과 후련함, 죄책감을 비롯한 고통이 눈이 시릴 정도로 잔뜩 담겨있었다.) 곧 마지막이야. 제발, …네가 끝을 맺어줘. (항상 네가 찾아와주길 바라왔어.)
 
강재인:(나를 위해서였다는 말. 그걸로 모든 것이 이해될 리 없었다. 게다가 세 사람 분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였다. 그 모든 일을 자신이 벌인 것이라 설명하는 이가, 하필이면, 가장 아니길 바랐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 그 따위의 설명이 용납될 리 없었다.) 그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거,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렇게 외치는 목소리는 원망과 비통함이 섞여들어 잘게 떨렸다.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철창 탓일까, 그와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철창을 양손으로 붙잡자 손끝에 금속의 차가운 감각이 닿아왔다. 늘 훤히 보였던 당신의 마음 또한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그 벽을 만들어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당신을 향한 애원 뿐이었다.) 난, 난 못 해. 이러지 마. (철창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애원하듯 말했다. 지난 번과는 달라져버린 상황. 그때 네가 이런 기분으로 내게 애원했던 걸까. 그럼 나는, 너의 부탁을 차갑게 거절해버린 대가를 받고 있는 걸까.) ... (그렇게 한없이 당신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다가, 천천히 철창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을 알았다. 이번만큼은, 이전과는 달리 강요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도. 힘없이 팔을 내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총, 안 가지고 왔어. 그러니까 기대하지 마. (그러니까, 죽지 말아줘. 그 말을 입안에 남기고, 대신 익숙한 거짓말을 흘려내었다. 동시에 몸을 살짝 움츠리며 당신의 시선을 피했다. 온갖 감정이 뒤섞인 그 눈빛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설득을 듣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정은창: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건… (당신이 제 눈길을 피해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다양한 감정이 섞인 시선으로 있다가, 권총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말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동시에 당혹스럽다는 눈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말을 아끼곤 했고, 기대하지 말라며 딱 잘라버리는 말에 제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바로 희망이었다. 시간을 돌리며 당신이 알아주길 바랐던 희망. 적어도 고통을 당신 손에서 끝내고 싶었다는 바람. 무참히 훼손되어버린 소원은 더 되돌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결국 정은창은 몸을 수그린 채 말을 더듬었다.) 그런, 그러면. (나는 극단적인 판단에 이를 수밖에 없잖아. 지금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단순하게 당신을 위해서였다는 말뿐이었다. 그렇기에 이것만으로 이해해 주길 바랐지만, 납득하지 못하는 마음이 이해감과 동시에 억울하기도 하였다. 나는 정말 너를 위해서였는데. 마지막에는, 너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을 뿐이다… … 자신은 이미 놓쳐버린 게 분명했다. 당신에게 좋은 사람은 커녕 상처를 안겼다. 당신의 원망 담긴 목소리가 이를 증명하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자신은 그른 사람이구나, 싶은 것이다. 당신으로 인해 서 있을 자리가 생겼었고, 그 자리를 외면하고 빠져나간 건 스스로였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하며 무슨 낯짝으로 네 곁에 있을 수 있겠나.) …미안해. (다만 염치없음에도 옆에 있고 싶단 마음은 여전해서, 정은창은 품 안에서 단도를 꺼냈다. 물러설 틈도 없이 당신 멱살을 쥐어잡고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찰나의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서려있었으며. 그럼에도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해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마지막이야.)
 
당신의 멱살을 잡고 칼을 들이미는 모습에 경찰들이 뛰어옵니다.
 
마치 찌를 듯이 가까워지는 찰나 철창문을 열고 들어가 정은창을 제압하는 경찰과, 단도를 휘둘러 반항하는 정은창.
 
반항이 극심해지려는 찰나 경찰 한 명이 정은창을 향해 총을 쏩니다.
 
그 단도가 제압을 시도하는 이의 목을 찌른 탓입니다.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총에 맞아 쓰러지는 정은창까지.
 
당신을 보고,
 
울상짓는 얼굴이.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림과 함께 시야가 암전합니다.
 
.
 
.
 
.
 
...
 
햇살이 들어오는 방 침대에서 눈을 뜹니다.
 
달력을 살피니 정략 결혼에 관한 통보를 듣던 날입니다. 결혼식에서 한 달 전.
 
정말 시간이 돌아갔습니다. 정말로 다시 과거에 돌아온 것입니다.
 
잠깐, 정은창은 어디 있죠?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간 거예요?
 
◆:정은창의 방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강재인:(한 달. 양피지에서 보았던 시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날이었다. 총에 맞아 쓰러지던 정은창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소란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던 그 장면이. 침대에서 급히 몸을 일으키고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틈도 없이 곧장 정은창의 방으로 뛰어갔다.)
 
정은창의 방으로 뛰어가면 말도 안 되는 풍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정하게 정리되어 깔린 이불과 텅 빈 방 안. 모든 짐이 빠져나간 장소. 정은창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방 내부를 살피니 책상 아래 서랍 하나가 아주 조금 열려있음을 발견합니다. 채 닫지 못한 흔적입니다.
 
서랍 내부에는 거미의 얼굴이 그려진 공책이 있습니다.
 
강재인:(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방을 허망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서랍 안을 뒤져 공책을 꺼내어 펼쳤다.)
 
공책을 펼치니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접합니다.
 
[ 아이호트의 일족이 지배한 숙주 명단 ]
 
[ 숙주의 근원지인 린튼 가문원 명단 ]
 
아이호트의 일족? 의문을 갖기도 잠시입니다.
 
이 명단,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나요?
 
◆:지능 판정.
 
강재인: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어째서인지, 신문과 정은창의 수첩에 적힌 명단의 이름이 연상됩니다.
 
다음 페이지를 펼치면 거미 그림과 함께 ‘숙주’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아이호트의 일족’이라는 작은 거미 같은 생명체가 인간의 몸을 차지하는 내용. 그 수를 늘여가려 한 내용.
 
수를 늘여 마침내 저들의 신을 불러 모시려 한다는 모독적인 이야기.
 
그들의 다음 숙주로 점찍힌 이는,
 
당신입니다.
 
◆:이성 판정.
 
강재인:
SAN Roll
기준치: 63/31/12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강재인, 이성 2 감소.
 
그 아래 필기체로 휘갈겨진 한 문장은 정은창의 글씨체입니다. 지켜야 해.
 
정은창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어디론가 사라진 그를 찾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방을 나가면 사용인이 지나갑니다. 사용인은 정은창의 방에서 나오는 당신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합니다.
 
정은창 님은 방금 떠났는데, 인사하고 가지 않던가요?
 
떠났다고? 도대체 어디로?
 
사용인: 마지막으로 남은 일처리가 있다고 했어요. 그것만 말하고 아침 일찍 짐을 챙겨서 저택을 나갔습니다.
 
◆:지능 판정.
 
강재인: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정은창이 마지막 남은 린튼 가의 친척이 머무는 장소를 메모해둔 종이를 떠올립니다.
 
그래, 씨를 말릴 작정인 모양이죠. 그게 무엇을 위한 것이든.
 
그 수많은 살인을 거듭해야만 했던 이유는 당신이었을까요?
 
손에 피를 그렇게 묻히고, 그렇게 죽어갈 가치가 있는 존재였단 말인가요, 그에게 당신은?
 
몸에 난 무수한 흉터들. 망가져가면서도 지켜야 했던 건가요? 당신을?
 
사용인이 문득 당신에게 편지를 내밉니다.
 
이걸 전해달라 했어요, 정은창 님이.
 
강재인:(편지를 낚아채듯 받아들어 펼쳐보았다.)
 
편지에는 간결한 문장이 몇 개 남겨져 있습니다.
 
▶:‘다시 돌아올게. 꼭 돌아올게. 그러면 내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 순간에.’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어? 그래줄 수 있을까?’
‘나는 네가 필요했어. 나는 너를 구하고 싶었어.’
 
마지막 순간, 마지막 순간. 도대체 그 마지막 순간이 뭐길래!
 
그래요. 정은창은 당신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었나봅니다.
 
몇 번이고 고쳐 죽어가면서도 이 모든 일을 감내할 수 있었나봅니다.
 
그럼 당신은? 당신은 어때요.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나요?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나요?
 
못한대도 상관없을 겁니다. 적어도 그 사람은 할 수 있으니까. 그거면 되는 이야기 아닐까요.
 
...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정은창을 기다리거나, 찾아가거나.
 
강재인:(돌아온다는 말.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그가 돌아온다고 해서, 그런다고 해서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이미 그는 손에 피를 묻혔고, 또다시 피를 묻히러 저택을 떠났지 않은가. ...하지만, 그를 따라간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그를 말릴 수도, 그렇다고 그가 하는 일을 도울 수도 없었다. 그가 행하고 있는 일은 분명 옳지 않은 일이었지만, 동시에 옳은 일이기도 했다. 나를 위한 일이라고. 그 말은 확실히 타당했다. 확실히.) ... ... (그렇다고 가만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를 다시 마주하고 나면, 무슨 방도가 생기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만 했고,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 무모한 짓일지도 몰랐지만, 기억을 더듬어 정은창이 향했을 장소를 떠올렸다.)
 
◆:떠올려봅시다. 지능 판정.
 
강재인: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정은창의 메모 속 지역을 떠올립니다.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지방의 한 호텔이었습니다.
 
분명. 지금 쫓아간다면 아주 늦진 않을 겁니다.
 
기차를 잡아타고 움직이는 당신을 누군가 만류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나, 그런 게 중요하던가요?
 
정은창이 향한 장소는 린튼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한 지역의 고급 호텔이었습니다.
 
호텔 안쪽으로 발을 디디면 정은창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주위 호텔 직원을 잡고 대인기능 판정을 통해 린튼 가 일원의 행방과 정은창의 행방을 질문함이 가능합니다.
 
강재인:저기, 혹시... (호텔 직원을 붙잡고 린튼 가 일원, 그리고 정은창의 행방을 물었다.)
매혹
기준치: 75/37/15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호텔 직원은 말끔한 당신의 외모와 티 없는 말솜씨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 대답합니다.
 
호텔 직원: 일행분이신가요? 원래는 숙박하는 분들의 정보를 비밀로 붙이고 있지만... 정말 급해보여서 그분들이 머무는 방만 알려드릴게요. 린튼 가 사람들은 901호, 정은창이라는 분은 603호에 머물고 계세요. 생각해보니 정은창이란 사람도 왔을 때 린튼 가의 행방을 물었던 것 같네요...
 
강재인:603호...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603호로 향했다.)
 
당신은 603호로 향합니다. 603호실의 문을 노크하고 초인종을 눌러보아도 묵묵부답입니다. 잠시 나간 걸까요?
 
강재인:... ... (설마, 벌써 늦어버린 걸까. 급하게 발걸음을 돌려 901호로 향했다.)
 
901호실로 올라가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 발을 딛기 무섭게...
 
탕, 하는 총성이 들립니다.
 
얼어붙어 있을 시간도 없습니다. 901호실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정은창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으니까요.
 
정은창:...! 강재인?
 
총성에 사람들이 몰릴 조짐이 보이자 정은창은 즉시 자리를 뜹니다.
 
◆:비상구를 통해 사라지는 정은창의 뒤를 쫓아갈 수 있습니다. 쫓아갈 경우, 민첩 판정.
 
강재인:
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65
판정결과: 실패
 
◆:강행 가능합니다.
 
강재인:
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인파를 헤치고 비상구로 따라갔을 때에는 이미 정은창이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계단으로 이어져 있고, 윗층으로 향했을 가능성은 적으니 1층으로 간다면 분명 정은창을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강재인:(눈앞에서 정은창을 놓쳐버리자 점점 불안해져 갔다. 이대로라면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뒷일을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1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신이 1층에 도착하면, 주위를 둘러보던 참에 누군가 당신을 사람이 없는 벽 뒤로 끌어당깁니다.
 
정은창입니다.
 
정은창:…지금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당신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른 이들에게 들킬까 걱정이 되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왜 온 거야?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음에도 괜한 질문을 던졌다.) 이제 다 끝났어. 정말로.
 
강재인:당연히, 너를 만나려고...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자 울컥 감정이 북받쳐 말꼬리를 흐렸다. 너를 만나고 나면, 너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이제는 당신을 말릴 수조차 없게 되었다. 모든 걸 되돌리기에도, 당신을 멈추기에도 너무 늦어버렸으니까.) ...정말 이걸로 된 거야? 너는, 정말 이대로 괜찮아? (이 모든 일을 벌인 것은 당신인데도, 왜 당신은 그렇게 평온하게 말하는 건지. 이렇게 몇 사람이나 해치고,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평온할 수 있는 건지.)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어? (당신이 무어라 대답할 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차마 당신을 바라보지 못했다. 엇갈리는 시선 속에서, 자신에게 남아있는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으나, 모든 것이 일그러져 있다는 사실만큼은 잔인할 정도로 선명했다.)
 
정은창:… (알고 있는 이야기였기에 침묵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왔다는 사실 정도는 깨닫고 있었다. 의문을 던진 이유는 확인받고 싶어서. 동시에, 차라리 부정해 줬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너에게 심한 짓을 했는데, 찾으러 와주다니.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 같은 심정은 더 풀리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마냥 한 가지 목표로 향해있을 뿐이었다. 당신을 지키겠다는. … 그런데, 지금으로 모든 게 끝이 나버렸으니 다시금 갈 곳 잃은 방황자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와중 제게 놓인 지름길은 자멸뿐이니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정은창은 여전히 침잠하고 차분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별 달리 눈물을 흘리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총을 들었을 때에도 같은 얼굴이었겠지.) 이렇게까지 해야 했어. 그들은 끝을 몰라. 씨를 말리지 않았다면 계속 너를 노렸을 거야. (확실하게 못 박는 말이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 이제, 돌아가야겠지. (바라보고 있지 않았지만, 당신을 향한 제안이었다. 저택으로 같이 돌아가도 괜찮겠냐는. 우리가 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자리로.)
 
강재인:우리가 같이 돌아간다고 해도... (많은 것이 바뀌어 있을 거야. 그 역시도 알고 있을 사실이었다. 죄를 저지르고도 이전과 똑같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건, 그 자체로 죄가 될 터이니. 그리고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비단 정은창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에게도 해당될 터이니. 그러나 이런 것들을 백 번 설명한다 한들, 그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 방법밖에는 없었노라고 호소하겠지.) ...가자. 같이, 돌아가자.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채 씻어내지 못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모든 일을 묵인해도 되는 걸까. 그렇지만, 묵인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얼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모든 일은 둘의 손을 떠난 후였다. 정은창도, 자신도,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미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정은창과 당신의 관계도.
 
당신은 정은창과 함께 돌아가기로 합니다.
 
저택으로 향하는 길, 기차 안에서 곤히 잠든 정은창은 살인마라고 믿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투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덜한, 살해를 거듭한 굳은 살이 박힌 손.
 
정은창이 잠든 사이 신문을 보면 1면에는 속보로 뜬 린튼 가 살해 사건에 관한 기사가 적힌 상태입니다.
 
…문득 복도 건너편의 누군가가 정은창을 힐끔대는 게 느껴집니다. 기사 내에 서술된 용의자 외관과 비슷하다 생각하는 걸까요?
 
정은창:(숨소리를 작게 내며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강재인:... ... (곤히 자고 있는 그의 머리를 제 쪽으로 당겨 기대게 하고는 복도 건너편의 사람을 노려보았다. 어딜 쳐다보냐는 듯이.)
 
건너편의 사람은 당신이 노려보자 급히 눈을 돌립니다.
 
정은창은 당신의 어깨에 기댄 채 아무 것도 모르고 계속 잡니다...
 
...
 
정은창은 역에 도착하고 나서야 잠에서 깹니다.
 
정은창:(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리자 눈을 퍼뜩 뜨고, 일어나보니 당신에게 기대서 잤다는 사실에 물음표만 띄운다.) 어, 어... 내가 많이 피곤했어서. (머쓱.)
 
강재인:응, 괜찮아. (혹시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건너편을 흘깃 곁눈질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얼른 내리자. 괜히 밖에 오래 있어봐야 좋은 꼴 못 보겠어.
 
정은창:괜찮다면 다행이고… (…) 그래, 내려야지. (당신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두 사람은 기차에서 내립니다.
 
어느 새 밖에는 밤이 찾아왔습니다.
 
저택 뒤쪽으로 향해 걸어가다보면, 정원에서 정은창의 발걸음이 멈춥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치고 상처가 가득합니다.
 
문득 달빛 아래 비춰지는 정은창이 흐릿하게 느껴집니다.
 
아니, 느껴지는 게 아닙니다.
 
흐릿합니다.
 
정은창:(걸음을 우뚝 멈춰섰다. 흐릿해지는 제 몸을 한 번 내려다 보았다. 손끝에서부터 서서히 사라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가, 고개를 슬며시 올려 당신을 주시하였다. 믿을 수 없을법한 상황 속에서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이게 당연한 순리라는 듯이, 이런식으로 자멸하는 게 예견되었다는 듯이…… 이내 다정하게 미소지어보였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로. 이런 상황에서 다정할 수 있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나는 곧 사라질 거야. (짧게 내뱉는 숨과 한 마디의 말. 너를 감히 사랑한 대가란 이런 거겠지.) 마지막이니까.
 
강재인:(점차 흐릿해지는 당신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게 기대어 잠을 청하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지금 눈앞에 놓인 현실이 비현실적이기만 해서. 그리고 이어지는 당신의 침착한 반응과, ...다정한 미소.) ... ...뭐?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정은창.) 왜, 왜 그렇게 침착해? 사라진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그딴 말을 믿을 리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부정의 말을 내뱉다가, 이내 말을 흐렸다. 반투명하게 비치는 당신의 모습과 살갗을 스치는 밤공기가, 차마 부정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으므로.) 너... 알고 있었구나. 이렇게 되리라는 거.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네가... 사라지고 말 거라는 거. (작은 목소리로 그리 읊조린 뒤에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는지 굳이 네게 물을 필요가 있던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 전부터, 자신을 향한 당신의 마음 정도야 알고 있었다. 그 깊이를 감히 짐작하지 못했을 뿐. 그저 끊어내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전부 자만에 불과했다. 타인의 감정을 전부 자신이 원하는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했던 자만심.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것마저 서슴치 않는, 그 깊은 감정을 감히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길 바라, 정은창? (당신을 향해 고통 어린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아니면... 사랑한다는 말? 당신의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그 눈빛은 마치 자신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아닌, 그저 일방향적인 사랑을 보내는 눈빛. 그래, 그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아마 마지막 순간이 될 지금조차도, 제게 무슨 말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비록 자신의 말에 일희일비할지라도 말이다. 무언가를 바라고 이런 무모한 짓을 벌였을 리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정은창이 강재인,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단순히 저를 지키기겠다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며 행했을 일이었다. 모두가 미쳤다고 말할지라도, 그에게는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단 하나의 소망이었던 것이다. 수 차례의 살인을 행하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죽음이라는 경험을 반복하고, 경찰에 체포되어 갇히는 한이 있더라도. 살인자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단 채로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더라도. 심지어는, 내가 그를 살인자라 여기며 원망하게 되더라도. 그저, 오롯이, 내게 눈이 멀어서. 내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너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내가 너를, 데려오지 않는 것이 옳았을까. 이럴 줄 알았더라면,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나, 그런 가정을 제쳐둘 수 없었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그를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우리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각자 정해져있던 운명에 따라 각자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어떠한 가정도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었다. 여태 살아오면서 겪어온 바와 똑같이 말이다.)
 
정은창:(차분한 이유는 말대로였다.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사라지게 될 거라는 건. 그렇다면 드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나는 왜 너의 앞에서 소멸하기를 택했는가. 어째서, 자신을 찾아온 당신을 굳이 붙잡았는가. 홀로 바스러지는 길을 충분히 걸어갈 수 있었음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제 완전한 판단을 깨닫지 못했다. 언제부터 혼란만이 가득 찬 머릿속이 유지되었던가. 너의 정략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아니면 내가 첫 살인을 저질렀을 때?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쓸쓸하지 않길 바라고, 나 또한 네게 진실을 전달하면서 제 외로움을 덜어내고 싶었다고. 그래도, 스스로 결론짓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울지라도 당신을 향한 친애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에와서도. 제 몸이 흩어져 허공에 휘날리게 되었지만, 당신을 향한 사랑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수많은 살인과 죽었던 기억을 모조리,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죄책감이 없었냐 물어본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선을 넘었을 때부터 제 안에서 썩어가던 죄악감은 곪아 터져버리기에 이르렀으니. 너에게 흘렸던 단서 내지 자신의 속마음. 그 안에서 너는 어떤 대답을 하였을까. 후회를 한다면 한 번도 대답을 듣지 못했던 그때일지라. 마냥 서글펐다. 제 죗값으로 인해 당신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나보다 소중했던 너에게서 떠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괴롭고 힘겨웠지만 웃었다. 마지막에는 제 웃음을 기억해 주길 바랐으니까. 네게 많이 보여주지 못했던, 이런 미소를.) 그냥. (바라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그저,) …나를 용서해 줘. (사랑한다는 말은 나에게 너무 과분하잖아. 당신이 제게 보였던 수많은 신뢰와 정, 애정.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으로 하여금 알아채는 법을 배웠으니, 당신 마음을 잡아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다가가지 못했던 이유. 나에게 당신은 너무나도 과한 사람이었으니까. 단순한 까닭이었다. 언젠가 결심했던 당신과의 추억을 전부 담아두겠다는 것. 담아둘 그릇조차 남지 않아도 차곡히 쌓아두었다. 이렇게 놔두면 언젠가는 누군가 봐줄 수도 있잖아. 이 두 사람은 정말 즐거웠겠구나, 하고. 아쉬운 일은 우리 둘의 결말이 비극적이라는 사실일 터. 그럼에도 우리는 즐거웠잖아. 함께 했던 기억들이 마냥 슬픔만은 아니잖아.)
그런 말은 하지 마. …너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이 소중했는걸. (이제 와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이야기인가. 홀로 살아가는 당신에게는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많이 생기겠지. 그런 축복을 받을 수 있을 법한 사람이었다. 네 고통은 내가 다 지니고 떠날게. 너를 지킴으로 진심으로 행복해서, 도움이 되었다는 진실이 기꺼웠다.)
 
강재인:(힘겨운 얼굴로 살며시 지어보이는 당신의 미소는, 어쩐지 홀가분해보이기만 했다. 그렇기에 당신을 쉬이 말릴 수도 없었다. 몇 번의 살인을 저지르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당신을 만들어낸 것도, 결국엔 나겠지. 이 저택에 걸맞은 행동거지를 가르치고 그의 언행을 뒤바꾸려 했음에도, 그의 심성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점을 고치라 수없이 이르면서도, 그런 그의 심성을 좋아했고, 사랑했더랬다. 그리고 그 끝에 남은 것은, 죄를 저지르고 내 앞에서 사라져가는 당신이었다. 이런 결말을 보기 위해 당신을 곁에 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을 바꾸려 들면서까지 곁에 두고 싶었던 것이 욕심이었을까. 나는... 처음부터 당신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했던 것이었는데.) 너도 알고 있잖아.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아꼈는지, 얼마나 애정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널 사랑했는지. (나를 위해서 저지른 일을 용서하지 못할 리 없었다. 아니, 애초에 당신이 행한 일에 대한 잘잘못을 감히 자신이 판단할 수는 없었다. 애정이라는 이름 아래 치우친 판결 따위가 세상에 존재할 리 없었으니 말이다.) 용서하고 말고는, 이미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이대로 당신을 보낸다면, 당신은 모든 죄에서부터 해방될 수 있을 터였다. 도덕적으로 따지자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받도록 두는 것이 옳았다. ...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나는, 이대로 그 없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의 희생을 전부 알면서도,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렇지만, 정은창. (결심한 듯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한 발짝 다가섰다. 눈에 담기는 에리카 꽃무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가 제게 건네었던 꽃다발을 연상케 했다. 이번만큼은, 주저하지 않고 당신에게 손을 뻗었다. 반투명하게 비치는 당신의 손을 붙잡으면, 그 손에선 여전히 온기가 느껴졌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변함없이.) 이대로, 이대로 가버리는 건 용서 못 해. (지금까지는 네가 나를 붙잡아왔으니, 이제는 내가 너를 잡을 차례야. 다짐하듯 그의 손을 어루만지다가, 이내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이대로 쉽게 놓아주지는 않겠다는 듯이. 그리고는 그 손을 끌어 제 가슴께로 가져다대었다. 단호하게 말하기로 마음을 먹었거늘, 마음과는 달리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복수하겠어 ...사랑해, 정은창. 사랑해. (그리 말하는 목소리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차오르는 애정에서 비롯된 애절함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말 끝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심을 말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삶에 대한 아쉬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당신의 눈빛이, 부디 사랑한다는 자신의 말에 조금이나마 흔들리기를 바랐다. 네가 한번쯤은 나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해보기를 바랐다. 그렇게, 네가 삶에 미련을 가졌으면 했다. 당신을 살릴 방법은 분명 존재하고 있고, 당신 역시도 그것을 알고 있을 터이니, 부디 당신이 삶에 대한 의지를 가져주기를 소원했다.) 그러니 부디, 죽지 않겠다고 해줘. 죽고 싶지 않다고 해줘. (그는 죽는 것이 옳다고.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그런 것은 전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애초에 옳고 그름 따위를 중요하게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다들 생존을 위해서 가장 먼저 저버리는 것이 도덕임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도 다른 사람들이 지나간 길을 따르기로 했다. 나는, 강재인은, 행복하기 위해서 정은창이 절실하게 필요했으므로.) ...가지마, 은창아. 내 곁에 있어. (명령, 혹은 부탁. 어느 쪽으로 받아들이는지는 당신에게 남겨진 몫이었다.)
 
정은창:…마찬가지였잖아.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외면했던 시절. 이유는 달랐음이 분명하지만 각자의 감정을 내버려 두었던 적이 있었다. 언젠가는 사그라들 것이라면서. 시간이 흐르면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고, 헛된 생각을 품었다. 당신은 저의 수많은 시각이 반복되어도 바뀌지 않는 심성을 사랑했고, 나는 맹목적으로 당신만을 바라보았다. 맹목안에 담긴 것은 비롯 애정만이 아니었을 것. 더 깊고 심오한 심정이었을 게 분명했다. 단순한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시도했다. 용서는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도, 너라도. 나를 용서한다 말해준다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해질 거라 생각했어. 이 세상과 정은창, 자기 자신은 그를 용서할 수 있을리가 없었기에. 정도를 넘은, 스스로를 향한 혐오는 끝이 없었다. 때문에 사라지는 순간에도 평온할 수 있는 거겠지. 슬픈 시선에 하나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보이면서. 당신이 한 발자국 다가오자 에리카 꽃잎이 부딪혀 사락, 소리를 내었다. 뻗는 손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도 원하고 있었기에. 내 손이 완전히 흐릿하여 투명해지기 전, 잡아주기를. 마지막으로 너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고. 손이 올려지면 마치 박동이 느껴지는 것 같아, 당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살아있구나. 너는 살아가겠구나. 내가 입힌 상처를 지니고도 앞으로 나아가겠지. 잊어달라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고, 차라리 기억헤주길 바라는 건 작은 욕심이었다. 나를 까먹길 바란다 해도 당신은 잊지 못하겠지만.) 강재인, 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쉽사리 조절하지 못했다. 손끝이 파들거리면, 보이는 건 당신의 눈물. 당신이 떨어트리는 한 방울이. 그것을 보자마자 입가에 걸렸던 미소가 일그러졌다. 도저히 웃지 못했다. 당신이 울고 있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겠나. 항상 눌러담았던 말과 마음. 그 모든 것을 마지막이 다가 오고 나서야 당신에게 고백할 용기가 생겼다. 물기가 찬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 …정말 힘들었어. 아팠고, 너한테 가장 미안했어.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럼에도 하나 떨어트리지 않았다. 한쪽 손으로 제 눈가를 쓸어내어 금방이라도 흘릴만한 걸 참아내었다. 만약, 너에게 이야기 했다면 이 끝은 달라졌을까. 혼자서만 견뎠던 일들이 커다란 후회로 다가와 깊은 뭍속으로 잠기는 듯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이런 당신을 두고 사라지기 싫었다. 나는 너만 필요했다 했지만, 너에게는 내가 필요했나 봐. 나와 함께 있어주는 네가 필요했나보다. 죄책감의 대상은 많았지만, 지금은 오롯 당신 뿐이었다. 말 한마디 꺼내기에 어려울 정도로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고 빌어도 모자를 정도로… … 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건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었다. 희미해진 정신을 바로잡았다. 흐릿한 눈앞에 겨우 당신을 담아내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무너트리지 않았다.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손을 잡힌 채.) 떠나가고 싶지 않아, 나도. 곁에 있게 해줘… (허락되지 않을 말들이었다. 그러나 정은창은 진심을 숨기는 것보다 속내를 고백하길 택했다. 이제껏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왔기에, 마지막 속죄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었고 타들어간 종이는 되돌릴 수 없다. 그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Log
(몸이 천천히 흩어지며 작은 빛을 만들었다. 동시에 견뎠던 몸뚱어리가 당신에게로 쓰러졌다. 당신에게 기댄 몸은 하나 무겁지 않았다. 무게가 없는 게, 죽음을 연상시킬 지도 모른다. 한 손을 들어올려 당신의 뺨을 매만졌다. 다 사라져가는 끄트머리였기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겠지. 그럼에도 손안에 담아내고 싶다는 듯이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 마지막에, 네가 곁에 있어줬으면 했어. … 고마워. (그게 끝이었다.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눈을 감았다.)
 
무던한 문장들이 스쳐지나가고 아, 맙소사.
 
이별의 때가 도래했습니다.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강재인:(평온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당신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는 모습에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이윽고 제 속내를 털어놓는 그에게는,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었다.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가 홀로 견뎌왔을 모든 무게를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늘 자신의 한 발짝 뒤에서, 혹은 한 발짝 앞에서, 자신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당신. 감정을 잘 숨기지도 못하고, 거짓말을 능숙하게 해내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신을 안심시키려 어떻게든 내어보인 모든 거짓들. 물기어린 목소리에는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과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수 차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가장 아팠을 사람은 너인데. 가장 고통스러웠을 사람은 너인데. 어째서 그런 당신이 나에게 사과를 건넨단 말인가.) ...은창아, (미안해, 미안해. 내가 널 곁에 두지 않았더라면, 네가 이런 일을 겪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그러나 이런 말들은 오히려 당신에게 위로가 아닌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전하지 못할 사과를 마음속으로 되뇌일 뿐이었다. 고작해야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그와 함께 있었던 시간보다, 그와 함께하지 않았던 시간이 훨씬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은창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당신에게 익숙해져 있었고, 당신은 나에게 당연한 존재가 되어버려서. 그래서 이 이별을 실감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제 바람과는 달리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가고만 있었지만. 곁에 있게 해달라는 말에 울컥하며 차오르는 감정을 눈물로 흘려내기도 잠시, 마침내 당신의 몸이 제게 기대듯 쓰러지자, 시선조차 돌리지 못한 채 허망하게 당신의 애타는 눈빛이 자리하던 곳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 ... (무게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몸체가, 그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굳어있던 팔을 움직여 당신을 끌어안는 듯한 동작을 취했고, 이내 그의 손길이 제 얼굴에 닿자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제 뺨을 매만지는 손길은 감각할 수 없었지만, 그 온기만큼은 제 살에 닿아 전해지는 듯 했다. 마치 영원히 남아있을 것만 같은 그 온도와는 달리,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득 담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도 서글퍼서, 계속해서 흐릿해져가는 당신의 몸을 지탱하려는 듯 안고 있던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가 사라지고 만다면 허공에서 엇갈려 결국 제게로 돌아오게 될 포옹이, 부디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며.) 곁에... ... (...있어줘. 몇 번을 말한다 한들 이루어지지 못할 소망이었다. 그렇기에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그저 한 순간이라도 더 당신을 눈에 담으려는 듯 말없이 당신을 쳐다보았다. 당신의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당신이 눈을 감아버린 이후로도, 계속.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은, ...차라리 운명을 거스르지 않은 나의 마지막에, 네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
 
달빛 아래 당신에게 가만히 기댄 정은창은 어느 순간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감은 눈꺼풀과 잦아드는 숨. 숨결.
 
아, 숨결.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숨결.
 
꽃잎이,
 
수많은 히스-에리카의 꽃들이 향을 내뿜으며 당신의 주위를 감쌀 때,
 
달빛이, 달빛이 정은창의 몸을 둘러쌀 때, 그래서 눈부실 때, 이 풍경이 견디기 어려워졌을 때.
 
품안이 가벼워집니다. 빛이 허공에서 맴돌고 누군가의 체온이 완벽하게 사라집니다. 허공으로. 공중으로 흩어져…….
 
이별.
 
바람이 불었던가요. 풍경을 메우는 꽃잎이 그저 아름답습니다. 그만큼 서글픈 것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아픈 이별이.
 
END 2. 히스클리프
 
정은창 소멸, 강재인 생환.
 
보상: 강재인 이성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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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파국 (GM):ㅋㅋㅠㅠ
수고하셨어ㅛ~~
 
...:예에...
고생하셔써요...
 
파국파국 (GM):수고하셨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성우님도요...흐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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